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이란 말의 어원적 의미와 행복에 이르는 길

by 강현숙

행복하고 싶다. 가능하다면 한번 찾아온 행복은 떠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것만 아니면, 그때 그러지만 않았으면, 남편이 이렇게만 해주면, 내 아이들이 내 생각대로만 살아준다면, 옆집 여자가 내게 자랑만 하지 않는다면, 내 사업이 승승장구 날마다 수익만 낼 수 있다면, 좋은 직장에서 인정받으며 때마다 승진과 넉넉한 급여를 받을 수 있다면, 좋은 차, 좋은 집, 이쁘고 고급스러운 옷과 장신구들을 사고 싶은 대로 다 사고, 여행하고 싶을 때는 언제든 럭셔리한 여행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끼니마다 챙겨주고 설거지며 집안 구석구석 말끔히 청소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아프지 않다면..... 그렇다면 나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처럼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들을 외적인 요소에서 찾으며 채워지지 않는 상대적인 결핍 때문에 불행을 느끼는 경우가 많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도 젊을 때부터 나만 부족한 것 같아서, 나만 가질 수 없다는 느낌 때문에 많이 울기도 했었고 불행하다는 기운을 온몸에 칭칭 감고 다니기도 했었다. 지금도 가끔은 가질 수 없는 어떠한 것들 때문에 고민하고 속상해하고 남편과 다투고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기도 한다. 그러나 외부적으로 부족한 것들 때문에 불행에 빠지는 대신 닥쳐온 상황들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대처하자는 마음으로 바라보면 그것들은 별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리곤 한다. 그래서 금방 잊어버리고 웃을 수 있다.


나는 방송대 4학년에 만난 교재 <행복에 이르는 지혜>를 공부하면서 행복이라는 것이 결코 외부의 어떠한 환경에 좌우되어서는 진정한 자신의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들 때문에 행복할 수 없다면 어쩌면 평생을 불행 속에서 헤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타고난 환경으로 따진 다면 나 같은 1960대의 이미 빈부격차가 벌어지고 있던 시기에 처절하게 가난한 집 맏딸로 태어난 자체가 불행의 조건이었다.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으면 숨 쉴 수 없었던 그때에 내게 과연 행복의 씨앗이 싹 틔울 수 있었을까? 불행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당연하게 불행 속에서 살았었다. 그러나 하늘은 행복한 사람 불행한 사람을 애초부터 구분 지어 놓지는 않았다. 다만 주어진 조건만 달랐던 것이다.

스스로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누구나 행복 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후 나도 나의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어떠한 조건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진정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 성공을 위한 공부가 아니고 행복해지기 위한 공부는 시간 내어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성공을 위한 시간보다는 행복을 위한 시간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내가 공부한 행복은 어떤 것들이었는지 복습해 보기로 하면서 우선 행복이라는 단어의 어원적 의미를 살펴보려고 한다.




(교재 중 내용 요약)

국어사전에서는 '행복(幸福)'을 복된 좋은 운수,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흐뭇한 상태라고 표현하였다. 옛날 중국에서는 행복을 '복지(福祉)'라는 말로 표현하였는데 복지와 관련된 것들로 休, 吉, 利, 幸, 祉, 美, 倖, 祐, 祚, 喜, 祿, 福 등이 언급된다.

일반적으로 幸이란 오래 사는 것, 福은 경사스러운 것, 祉는 천지신명으로 부터 받은 행복이란 뜻이다.

중국 고전에서는 '祉八福也' 라하여 祉와 福을 동의어로 보고 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의 행복이라는 단어는 1875년경 일본에서 벤담(J. Bentham)의 책 <도덕 및 입법의 원리 입문, 1789)이 번역되면서 'happiness'의 역어로서 처음 등장한 말이다. 원래는 학술어로 소개된 말이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와 중국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면서 일상어로 자리 잡게 되었고 반면에 '福祉'라 는 말은 점차 퇴조하여 '사회복지'와 같은 행복과는 다른 의미의 말이 되었다.


'happiness'라는 영어도 거슬러 올라가면 그리스어 'eudaimonia'를 어원으로 하고 있으며 'eudaimonia'는 선한 신이 지켜주는 마음의 평화, 평안을 의미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많이 나오는 말로 그곳에서 'eudaimonia'란 인간 행위의 최종 목적지이자 최고선으로 언급되고 있으면서 인간의 본질적 기능인 이성적 기능을 잘 발휘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 eudaimonia가 훗날 영어로 happiness 가 되었고 또다시 행복으로 번역된 것이다.

그런데 사실 happiness는 '우연히 일어나다'라는 뜻을 가진 중세 영어 happ가 그 어원이다. 즉 현대 영어의 happen과 뿌리가 같다. eudaimonia가 역어로 happiness가 된 데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가 고려되었겠지만 순전히 어원적인 의미로만 살펴본다면 'happiness'는 외적인 것, 즉 재산이라든가 이른바 생각하지 않았던 행운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라면 'eudaimonia'는 이성적 내면적인 것으로 엄밀히 따진다면 서로 반대되는 의미의 단어이다. 결국 고대에는 내면적인 행복을 추구했다면 현대에는 '운' 또는 '우연'으로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모습이 행복으로 변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happiness의 그리스적 사고에서는 우연이라는 것이 실은 신으로부터 연원 하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 암암리에 전제되고 있다. 어떤 우연이든 결국은 필연적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운명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우연의 결과가 행운이던 불운이든 간에 모두 운명의 틀 안에서 긍정적으로 승화되고 있다. 즉 행운은 그것을 누릴만한 자격 있는 사람에게 '우연'이란 이름으로 주어지는 '필연'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그리스적 행복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happiness의 뜻에 가장 근사한 어원은 '잘 산다', '좋은 삶'의 의미를 가진 'euprattein'에서 찾는 것이 한결 타당하다.




행복을 논할 때는 개인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이라는 인간 존재의 이중적 구조에 주목해야 한다. 즉 행복의 내적 조건과 외적 조건을 모두 살펴보아야 한다. 내적 조건은 개인의 주관적 마음의 문제이며 외적 조건은 객관적 상황의 문제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밑바탕은 서로 밀접하게 얽혀있으므로 종국적으로는 주객 양자의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

행복한 상태 , 즉 마음의 만족 상태는 고정적이고 불변적인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갖고 싶은 장난감을 부모에게 졸라서 얻어냈을 때 그 기쁜 표정이란 마치 세상을 다 얻은듯한 표정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면 대부분 그 좋아했던 장난감을 밀쳐놓고 또 다른 장난감을 갖고 싶어 얻어낼 때까지 울거나 보채며 스스로 불행에 빠진다. 우리의 결혼생활도 살펴보면 연애할 때의 사랑하던 그 사람과 결혼만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다 감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얼마 후 서로는 또 다른 행복할 거리를 찾는다. 웬수가 되어 헤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것들이 모두 행복의 유동성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행복이라는 산이 있어 오르려고 하지만 산을 오르는 과정이 힘들고 위험한 순간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정상에 올랐을 때의 성취감은 올라올 때 겪었던 이 모든 어려움과 고통스러움을 잊게 하고, 오히려 몇 배의 기쁨을 선물해 준다. 행복이란 지금 한때 노력한 것이 어느 때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한걸음 한걸음 오르는 노력이 있어서 정상에서의 기쁨을 맞이 했듯이 행복은 산을 오르려는 노력의 축적에 의해서 발현되는 것이다. 행복에로의 노력을 뒷받침하는 원동력은 행복에 대한 욕망과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신하는 가운데 있을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원동력이다. '구하라! 그러면 구할 것이다.'라는 말이 소망을 이루는 믿음이 되어주듯이 자신들의 실존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는 행복에 대한 욕구에 능동적으로 부응하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PS : 다음회에는 방송대 교재 <행복에 이르는 지혜>에 소개되는 동서양의 사상가들이 펼치는 행복론에 대해 소개해 드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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