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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으로 먹는 음식

어죽 이야기

by 강현숙

초등학교 동창생 몇 명이서 20여 년 전에 ‘좋은 친구들’이라는 명칭으로 모임을 결성했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친구 간에 서로 근황도 살피고, 맛있는 거 먹고, 함께 경치 좋은 곳 구경하며 살자고 만들게 된 모임이다. 당시에 고향마을 주변에 둥지를 튼 친구들 8명이서 만들게 된 모임이었는데 우리 모임이 좋아 보였는지 몇 명이 더 들어와 지금은 13명이 함께 하고 있다.


돌아가며 유사를 하고 회비는 적금으로 모아서 환갑이 되면 단체로 해외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20년 전 젊을 때와는 달리 많이 바빠진 우리는 한 달에 한번 모이는 것이 부담된다 하여 지금은 두 달에 한 번씩 만난다. 회원 중에 동생이 꽤나 유명한 어죽 전문점을 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유사 일 때 동생 식당에서 모임을 한 적이 있다.

작은 민물고기나 미꾸라지 등을 원재료로 하여 푹 고아서 만든 육수에 고추장과 양념을 하고 쌀과 국수를 넣고 끓여내면 맛있는 어죽이 된다. 우리나라 저수지가 있는 곳이면 대부분 어죽 집이 있다.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로 유명한 유홍준 교수의 서산 편에 소개되기도 한 음식이며 친구 동생 식당이 바로 그 동네에 있다. 그곳에서 모임을 하며 미꾸라지 튀김과 어죽을 먹었다. 다행히도 친구들 대부분 어죽에 대한 추억이 있어서 옛날 어죽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초등학교 시절 한여름 비가 온 다음날 오빠와 오빠 친구들은 커다란 망태기와 누구 집 허름한 양은솥 하나, 그리고 국수와 고추장 한 사발을 챙겨서 개울가로 간다. 오빠들은 편을 나누어 한편은 아래쪽에 망태기를 대고 있고 한편은 물고기가 있을법한 위치를 몰아서 망태기에 물고기가 들어가도록 한다. 그리고 또 한편은 잔 나뭇가지들을 모아서 불 땔 준비를 한다. 각자 맡은 임무는 반은 놀이이다. 특히 고기몰이를 하는 편은 물장구를 치며 시끌벅적하다.


한바탕 소란이 있고 난 후 잡혀 온 물고기를 손질하고, 밭둑에 돌을 고여 솥을 걸고 불을 지펴 물이 끓으면 고추장 푼 물에 물고기를 넣어 한소끔 펄펄 끓인 뒤에 국수 넣고 끓이면 어죽 완성이다. 좀 더 맛있게 먹으려는 욕심이 있을 때는 개울가 밭에서 풋고추 몇 개와 깻잎 몇 장을 서리하여 뚝뚝 자르고 대충 찢어서 넣으면 확실히 더 맛이 난다. 고추 몇 개 깻잎 몇 장 서리해도 그때는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물은 아마도 개울물 그대로 퍼다 끓였던 것 같다. 그리고 젓가락은 냇가에 지천으로 자라는 버드나무 잔가지를 꺾어서 썼다.

동생이라고 챙겨주는 오빠가 있어서 내 몫은 항상 있었다. 찌그러진 양은그릇에 국수 한 그릇 담아 버드나무 젓가락을 꽂아서 건네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중학교를 갓 졸업한 남자 또래들이 대충 끓여 냈어도 그 음식을 먹고 탈이 난 사람도 없었고 또 맛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솥 바닥에 눌어붙은 국수까지 긁을 수 있을 때까지 긁어먹었다. 그때의 '어국수' 맛은 내게는 지금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지금은 국수만 넣고 끓이면 '어국수'라 하고 쌀을 함께 넣으면 '어죽'이라고 분리해서 부른다.

친구 동생 식당에선 찹쌀과 국수를 함께 넣어 끓인 어죽이었는데 어릴 때 개울가에서 오빠들이 끓여준 '어국수', 그 맛과는 달랐다. 먹기 좋게 물고기 뼈를 다 발라내고 갖은양념을 하여 입에 착착 감기는 맛이었다.


지금은 별미로 먹고 있는 '어죽'이란 음식의 원조는 거친 오빠들의 즉석 천렵에서 조미료도 없이 끓여 시장기를 양념 삼아 먹었던 그것이었을 것이다.

추억은 어느 형태의 것이든 현실에서 미소를 소환해 준다.

추억을 이야기하며 추억의 양념을 곁들여 먹었던 그날의 '어죽'은 또 다른 추억이 되어 떠오를 때마다 입안에 침이 고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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