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주고 행복을 느낀 어느 일요일의 일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일어났다가 몸이 원하는 대로 다시 눕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10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힘들게 마음을 다잡고 문을 열고 나왔다. 일단 집을 나와야 무엇이라도 할 것 같았다.
그래 봐야 갈 곳은 시장뿐이었다. 마음을 달래며 소박한 장을 펴놓고 약간 힘이 빠져버린 새우를 쪘다. 가을이 가기 전에 팔기만 했던 새우를 나도 한번 먹어보자는 마음이었다. 새우 찌는 것을 보았는지 손님 한분이 오셔서는 새우를 사겠다고 했다. "새우가 맛있으니까 사장님도 드시려는 거죠?" 하고 물었다. "새우를 안 먹으면 아무래도 가을을 못 보낼 것 같아서요"하며 웃었다.
나오기 싫은 마음을 간신히 일으켜 나온 상태여서 크게 장사에 의욕이 없었다. 그래도 남아 있는 물건들은 없애야 하니까. 누구라도 원하기만 하면 가져가라고 드릴 참이었다. 새우가 얼마냐고 묻는 그분께 시세보다 천 원을 내려서 불렀다. 그런데 이분이 박스당 천 원씩만 더 빼 달라고 한다. 천원을 더 빼면 겨우 원가이다. 그래도 두말도 안 하고 그러겠다고 했다. 그때 이분의 표정이 얼마나 행복해 보이던지 그만 나도 행복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마음으로 생각했다. "그래 오늘은 누구라도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행복해지게 해 보자. 이미 원가는 다 빠진 거잖아?"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아침에 그리도 갈피를 못 잡던 마음이 차분해 지면서 의욕이 솟아나는 걸 느꼈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새우가 맛있게 익어가는 냄새가 났다. 그 시점에 한 여자 손님이 오셨다. 물건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새우 찐 것이 너무 익어버릴까 봐 불을 껐다. 그리고는 그분에게 "제가 먹을 건데 같이 드실래요?" 했더니 너무 좋아한다. 손을 씻고 깔끔하게 껍질을 벗겨서 일회용 접시에 젓가락과 함께 드렸더니 아주 맛있게 드시면서 자기가 시장을 다니며 이런 대우를 받은 건 처음 있는 일이라고 너무 행복하다고 한다. 덕분에 나도 정말 행복한 기분이 되었다. 또다시 다짐을 했다. "이 정도의 친절에도 받는 분들은 저렇게 행복해하시는구나. 하루 중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면 그게 의미 있는 삶이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우리 집에 오시는, 그래서 나를 만나는 손님이라면 누구라도 행복하게 해 드리자는 마음으로 하루종일 기분 좋게 일할 수 있었다.
오늘 나를 만난 분은 몇 분인지 헤아릴 수는 없지만 그분들 모두 기분이 좋으셨을 것을 확신한다. 내가 이미 내려놓은 가격을 더 깎아달라 해도 그러라 했고, 덤을 달라는 분들께는 기분 좋게 더 드렸다.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제값을 받고 물건이 남은 것과 조금씩 깎아드리면서 다 팔은 것과 마진에는 크게 차이가 없을 듯하다. 같은 수입이면 누군가를 기분 좋게 해 드리면서 나 자신도 더욱 행복해 질수 있다면 그게 더 이익이겠지? 상대가 기분 좋고 덩달아 나도 행복해지는 그런 장사라면 누구라도 해볼 만 한거지? 라는 생각을 했다.
의미 없이 게으름을 부리며 보낼 뻔했던 하루를 어느 날 보다도 행복한 하루로 만든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몸도 가볍다. 이런 마음으로 장사를 하는 동안은, 아니 장사를 그만두고 손님과 상인으로 만나는 관계가 아니더라도 내가 만나는 어느 분이든 하루에 한 명씩이라도 행복해지게 만드는 삶을 살아야 겠다.
내 행복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