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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숙 Oct 10. 2022

2022 홍도에서

따로, 또 같이


전망대에 서면 한눈에 마을이 모두 보이는 섬이 있다.

바로 홍도, 섬과 마을을 속속들이 다 돌아보아도 한나절도 걸리지 않는 섬으로 한 개의 큰 섬과 수많은 작은 바위섬들로 이루어진 전남 신안군 흑산면에 속한 섬이다.


배에서 내린 나는 섬을 발로 느끼길 원하며 이곳저곳을 걸었다.

시멘트로 지어진 집들은 특별할 것이 없었지만 좁은 언덕에 집을 짓기 위해 계단식으로, 집한 줄 있으면 하나의 작은 골목이 있고, 골목 위로 또 한 줄의 집이 있는 달동네 같은 마을이었다.


 그나마도 일반 거주를 목적으로 하는 집은 한 채도 보지 못하였다. 모든 집들은 식당이나 특산물 판매, 카페, 숙박업 소등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섬 전체가 관광섬이었던 것이다. 그 건축물만으로 찾아오는 관광객을 다 수용할 수 없었던지 항구로 연결된 방파제에는 포장마차도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다. 포장마차는 여러 종류의 해산물과 술들로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눈길과 발길을 머물게 했다. 이미 홍도의 유명 거리가 되어있었음을 난 올여름 처음 알았다.


남편과 오붓하게 데이트하듯 두발로 섬을 느끼고 싶다는  내 생각과는 다르게 남편은 홍도에서 느끼는 손맛을 원했던 것 같다. 어느새 나 모르게 작은 낚시도구 하나를 사서 가방에 넣어두었던 것이다. 그리곤 섬에 내리자마자 관광안내도를 보면서 매의 눈으로 낚시 포인트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선택한 곳은 항구 넘어 몽돌 해수욕장 방파제였다.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맑은 물에는 학꽁치들이 떼를 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그 학꽁치 만을 목표로 미끼를 던지는 사람들은 쉴 새 없이 줄을 당겨 학꽁치를 건지고 다시 미끼를 달아 던지곤 하였다. 남편은 재미있는 듯 쳐다보다 내 눈치를 보면서 가방 속에 숨겨온 낚시 도구를 꺼냈다. 하지만 미끼가 없었다. 가까운 곳에는 살 곳도 없었다. 그렇게 포기할 줄 알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방파제에 붙은 고둥을 잡아 살만 꺼내어 미끼로 달고 줄을 던졌다. 참으로 낚시를 향한 남편의 집념을 막을 수는 없었다. 막을 수 없으면 같이 즐기는 것이 내 정신건강에 이롭다.


나는 바지를 걷어 올리고 고둥을 잡기 위해 바다로 들어갔다. 정말 씨알 좋은 고둥들이 다닥다닥 바위에 붙어있었다. 삶아 먹어도 좋을, 미끼로 쓰기에는 좀 아까운 녀석들을 한 줌 잡아 남편에게 주었다.


더 이상 내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고 느낀 것인지 의기양양해진 남편의 낚시에 물고기가 걸리기 시작했다. 철없는 줄돔 새끼들이 그나마 남편의 기를 살려주고 있었다. 잡혀오면 놓아주고, 다시 미끼를 끼워 던지고 또 잡혀오면 놓아주기를 반복하면서 홍도 바다를 즐기고 있었다.


아직 주어진 시간이 넉넉함을 확인하고 난 전망대를 향해 걸었다. 그곳에서 보니 정말 딱 한눈에 홍도가 다 보였다. 방파제에서 낚시하고 있는 남편의 모습도 보였다.

 

혼자서 즐기는 여행도 할만하다고 느낄 즈음 두세 명씩 시끌벅적하게 전망대를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스쳐가는 눈길느껴졌다. 그 눈길에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마는 내 마음을 맞춰주길 바랐던 남편의 돌발행동에 살짝 서운한 마음이 있었기에 제풀에 '저 아줌마는 왜 혼자야?' 하는 듯 해석하며 씁쓸해지기도 했다.


섬에 살면서 무슨 섬이 그리워서 섬 여행을 계획했을까? 그저 같이, 같은 생각하고, 같은 것을 보면서, 같은 행복을 느껴보자는 소박한 바람으로 2박 3일을 계획하여 떠났던 여행에서 난 나하고 싶은 것을 생각했고, 남편은 남편 하고 싶은 것을 생각했다는 사실에 갈등이 생길뻔했다.


부부 일심동체는 옛말로서만 존재하는 것일까? 같이 있는 듯 또 따로인 우리 같은 부부를 이르는 말은 아닌듯하다는 생각을 하며 돌아오는 배에 올랐다.


돌아오는 뱃길은 거칠었다. 심한 흔들림에 무섭다는 생각이 들자 곁에 있는 남편의 팔을 잡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 단 한 사람 때문에 안도하고 있는 나는 참 속도 없는 사람이었다.


숙소가 있는 흑산도에 도착하여 흑산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자 했을 때 다행히도 마음이 통하였다.  식사와 안주를 겸한 흑산도 특산물이 입맛에 맞으니 홍도에서 서운했던 마음이 씻겨지는 듯했다. 앞의 서운했던 감정들을 한 가지 만족함으로 다 덮어버리는 마음의 간사함이란... 그렇게 모든 관계 속의 시간들은 따로 또 같이 오늘에서 내일로 이어질 것이다.


에필로그

올여름 흑산도와 홍도 주변의 섬들을 돌아보는 여행 중에 유독 홍도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아마도. 작으나마 남편과의 갈등 때문이었겠지요. 그러나 그 또한 인생공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하고 싶은걸 해서 행복하다면 상대도 또한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행복할 거라는, 남들은 이미 다 아는 공부요ㅎㅎ.

인생길이라는 게 '따로 또 같이'를 인정할 때 행복의 크기도 커진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던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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