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한 결정이 필요했다.
-나이도 있으니 조금 쉽게 가자- 는 마음과 -나이도 있으니 더 늦기 전에 힘들어도 해보자- 는 두 마음이 팽팽하게 대립하다 결국 양다리를 걸치기로 했다. 새벽도매장사에서 손님을 확보하지 못해 손해가 발생할 경우 소매에서 번돈으로 충당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한번 해보자- 는 오만한 생각의 원천이 바로 소매였다.
새벽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정확하게 밤 1시면 출근을 했다. 이미 출하된 물파래와 물미역, 톳을 다 팔아도 하루 밥값도 안 되는 마진이 발생할 정도의 양만 시켜놓고, 각자의 지역에서 도소매업을 하시는 사장님들을 만나기 위해 시장 곳곳을 돌아다녔다.
엽채류 전, 과일전, 양념 전, 서류 전, 배추 전, 대파 전. 곳곳을 돌아다니며 누구라도 눈이 마주치면 인사부터 했다. "안녕하세요? 물미역장삽니다. 물미역 필요하시면 연락 주세요" 그렇게 인사하며 명함을 돌리며 돌아다녔다. 뒤통수에 느껴지는 -저 아줌마는 얼마나 가려나?- 하는 비웃음의 기운이 느껴졌다. 때로는 -대단하네 뭐라도 하긴 하겠다.-는 칭찬 같은 말도 들렸다. 그래도 못 들은 척, 허파에 바람 빠진 사람처럼 웃는 얼굴을 하고 돌고 또 돌았다. 찬바람이 온몸에 파고들었지만 춥다고 들어앉아 있으면 누구도 만날 수 없기에 화장실도 참아가며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아침 7시까지는 아무런 성과가 없어도 그렇게 했다.
그리고 7시가 되면 가게로 돌아와 소매를 준비하며 아침을 먹었다. 졸음과 피로가 몰려왔지만 고등어, 오징어 한 마리씩이라도 팔리는 재미에 다시 기운을 차리곤 했다. 그러다 견딜 수없이 졸음이 밀려올 때면 시장 휴게실에서 쪽잠을 잤다. 혹시라도 '사장'을 찾는 손님들이 있다 하면 바로 튀어나와야 했기에 목욕탕마저도 갈 수가 없었다.
김장철이 끝나고 본격적인 겨울에 접어들었다. 가게의 주말장사는 매주마다 성황을 이루었다. 새벽장에서도 한두 개씩 팔리던 내 물건들이 조금씩 양이 늘어나고 있었다. 잠 안 자고 쫓아다닌 나의 간절한 노력에 손님들도 한 명 두 명 반응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날은 아침 7시가 넘어서 물건을 찾는 손님의 전화를 받고 다 팔렸다고, 전화를 주셨는데 물건이 없어 죄송하다고 말하며 통화를 마칠 때 -둠벙 맹글먼 개구락지 모이는겨-라고 하시던 엄마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지금도 그때의 결정이 지금까지 망하지 않고 올수 있었던 선택이라고 믿는다. 그때 만약 소매를 선택하고 당장 눈에 보이는 수입에 만족했더라면 지금 처럼 안정적인 소득을 유지 하면서 틈틈히 여가를 즐기는 삶은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