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판매량이 늘어나면서 도매에서도 소득이 생기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계산상의 소득이었다. 몇 번씩 현금 주고 사가던 거래처 사장님들은 한 번 두 번 -내일 줄게요- 하며 미루기 시작하더니 보름결재, 월말결재를 하자고 하였다. 아예 처음부터 그런 제안이 수락되어야 거래할 수 있다는 곳도 있었다. 동일한 품목을 파는 곳이 여러 군데 있으니 내가 거절하면 그분들은 다른 거래처를 찾을 것이다. 일단은 수락해야 했다. 외상거래를 수락하면서 매출은 더 올랐다.
매일 현금결제를 하고 물건을 확보해야 하는 내겐 '미수금'이라는 세 글자가 호랑이보다도 더 무서운 단어가 되었다. 호랑이를 피하기 위해서 열심히 소매를 하고 그곳에서 발생되는 이익금으로 간신히 간신히 장사를 이어갔다.
15일이 되고 말일이 되면 정확하게 미수금을 결재해 주는 몇몇 사장님들은 신처럼 보였다. 그분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은 좋은 물건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공급하는 것으로 보답드리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거래를 이어오고 있다.
문제는 고의적으로 미수금을 불려놓고 내일로, 말일로, 다음 달로 미루는 분들이다. 시즌이 끝났는데도 결재하지 않고 다음시즌이 돌아올 때까지 전 미수금을 안고 가시는 분들이다. 그러다 폐업하고 사라지는 경우를 여러 번 당했다. 처음에는 집 주소 알고 연락처를 알고 있으면 어떻게든 조금씩이라도 받아 낼 줄 알았다.
그런데, 미수금 회수대신 폐업하고 파산선고를 해버린 사람은 법원에서 채무자를 보호해 준다는 사실을 법원의 한 통지를 받고 알게 되는 비싼 공부만 했다.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물량만 많이 팔려던 욕심이 합작한 결과였다.
늦었지만 정보수집을 해야 했다.
친절한 몇 분의 도움으로 안전한 곳과 불안한 곳을 알 수 있었지만 그때는 이미 3년 차의 시즌이 시작한 시점이었다.
1년 차, 2년 차에 거래하면서 300만 원이 넘는 미수금을 주지 않던 한 손님은 3년 차에 거래처까지 바꾸며 나를 피해 다녔다. 그분이 자주 가던 곳을 기웃거리며 간신히 만나도 돈이 없다며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그때의 미수금을 지금까지 주지 않는 그분은 시장에 블랙리스트 5위안에 드는 사람이었다.
3년 차에 신규 거래처가 몇 군데 더 늘었다. 이미 정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여 미수금을 불리지 않으려 조심했지만 두 군데 에서 또 당했다. 한 곳은 폐업하고 사라졌는데 각 업체마다 수억 원의 미수금이 깔린 상태라서 상대적으로 적은 미수금이 있던 나는 처음부터 포기하고 말았고, 한 곳은 내일 내일 미루다가 다음 주엔 꼭 주겠다고 일주일만 기다려 달라하더니 약속한 일주일 후에 법원의 채무변제요구를 하지 말라는 통지를 받게 하였다. 내일, 또 내일 줄 것처럼 미루면서 그사이 법원의 절차를 진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황당했었던 기억이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다.
속된 표현으로 먹자는 놈과 하자는 놈은 막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지금도 웃으며 거래하지만 언제 누가 마음먹고 미수금 떼먹을 머리를 굴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마음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돈이라는 놈이 말을 안 들어서 그런 상황이 생겨날지도 모른다.
장부정리를 하면서 숫자가 올라갈수록 마음이 불편해지는 단어는 바로 미`수`금`이다. 미수금이 쌓인다는 건 많이 파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 마진이 없다. 어느 한순간에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가 되는 것이다.
요즘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는 곳은 모두 신용카드 결제기가 있어 외상거래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아직도 도매시장이나 일반 시장에서 판매자를 고객으로 장사를 하는 분들은 현금거래가 많다. 특히 생물장사를 하는 상인들은 실시간으로 선도가 떨어지는 물건을 갖고 있을 수 없어 -내일 줄게, 팔고 줄게-라는 말들에 물건을 내어주게 된다. 물론 좋은 분들이 더 많지만 어쩌다 한두 분 때문에 돈 잃고 상처받는 경우가 있으니 그런 정보를 미리 알고 피해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