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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숙 Jul 31. 2023

4억 그지, 21

작은 아빠를 놀래 주려고 살금살금 복도를 걸어가는데 -어떡해요?- 하는 작은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일지 몰라서 걸음을 멈추었다. -주호가 당장 모두 내놓으라고 하겠어? 내일이야기 하자고 하고 내가 데려다주고 올게- 하는 작은 아버지의 목소리도 들렸다. 주호는 맡겼던 것을 당장 내놓으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졸업했으니 인사를 드리는 게 당연했고 포클레인이 하천주차장에 방치돼 있는 이유를 듣고 싶었다. 그래도 작은아버지 부부가 하는 말들이 개운치는 않았다.


 "작은 아빠!"

주호는 환한 얼굴로 작은 아빠를 불렀다.

"어 주호 왔구나! 그래 졸업은 잘했고? 고생했다." 하며 광철은 주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네, 근데 작은 아빠가 졸업식에 안 오셔서 서운했어요. 나 상 받는 모습 보여주고 싶었는데..."

주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광철도 흔들리는 눈동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어제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못 갔다. 늦게라도 가려고 했는데 하다 보니 시간이 지나 버렸어, 미안하다."

"뭐 이미 지난 일인데요. 근데 사무실 옮기셨어요? 사무실은 다른 사람이 있고 포클레인은 하천에 있던데 무슨 일이에요?"

"응 요즘 일거리가 없어서 경비 좀 절약하려고 사무실을 뺐어, 너도나도 포클레인을 갖고 있으니 기사도 구하기 힘들고 월급도 많이 달라는데 그나마 일거리가 안 들어오네, 내일은 가서 청소도 하고 기름칠도 하려고 했는데 네가 왔으니 너랑 같이 해야겠다. 오늘은 일찍 내려가서 자고 내일 아침에 포클레인 청소하러 가자"


주호는 그러자며 그럼 집에 가보겠다고 나섰다. 광철은 태워다 주겠다고 했고 진숙은 주호가 어른이 됐네 하면서 배웅했다. 작은아버지도 작은 엄마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음을 느끼며 더 시간 끌 것 없이 내일 포클레인 청소하고 맡겨두었던 통장이랑 인감이랑 다 돌려받을 생각을 했다.  

        

집안은 찬기가 가득했다. 엄마가 있을 때는 살림이 없어도 항상 깔끔하고 훈훈했는데 오늘은 보일러를 풀로 돌려도 집안에 온기가 돌지를 않았다. 안방문을 열어보았다. 단정하게 정돈된 침대와 아무것도 없는 화장대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주호니?- 하며 엄마가 돌아볼 것 같아 눈시울이 뜨거웠다. 거실에도 티브이만 딸랑 있고 주방에도 몇 개 안 되는 그릇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주호는 2층 자기 방으로 갔다. 낮에 나가며 흩트러트린 침구가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그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주호는 꿈을 꾸었다. 사방으로 막힌 높다란 벽속에 갇혀 있었다. 아무리 밀어봐도 꿈쩍도 하지 않는 차갑고 두꺼운 벽이었다. 작은 아빠를 불렀다. 제발 자기 좀 꺼내 달라고 외쳤다. 그때 작은 아빠대신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호야 엄마손을 잡아- 그러나 주호는 엄마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엄마는 날 버렸잖아요. 요. 요- 하며 잠에서 깨었다. 엄마가 재혼하고 2년 동안 한 번도 엄마꿈은 꾸지 않았다. 가끔씩 엄마가 생각날 때는 고개를 흔들며 공부에 집중했다. 그렇게 잊힐 줄 알았는데 집에 오니 무의식이 엄마를 기억해 낸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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