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현숙 Jul 31. 2023

4억 그지, 22

빨간 종이

  

점심 장사하고 포클레인 청소를 하자고 한 작은아버지의 약속에 주호는 더 먼저 가서 청소를 하겠다고 마음먹고 집을 나섰다. 빨간 면장갑과 쓰레기를 담을 봉투, 걸레를 챙겼다. 오늘 포클레인이 다시 반짝거리게 될 것을 상상하며 기분 좋게 하천주차장으로 갔다.  쓰레기를 봉투에 담고 걸레로 꼼꼼히 닦았다. 흙이 떡이진 발판을 빼내어 하천 돌다리에 가서 씻었다. 아직 2월의 날씨는 차가웠다. 그 날씨에 이마에 땀이 맺히도록 열심히 했다. 작은 아버지는 아직도 오지 않았다. 식당에 중요한 손님이 오면 그분들이 갈 때까지 대기하고 있던 작은 아버지를 생각하고 그래서 늦나 보다 생각했다. 그때였다. 검은 점퍼 차림의 남자 두 명이 포클레인으로 다가왔다. 주호는 포클레인에 무슨 짓을 할까 봐 긴장했다. 남자들은 주호를 바라보다. 눈이 마주쳤다.


" 혹시 네 아빠 성함이 심성철 씨니?"

아빠를 아는 사람들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네, 그런데 누구시죠?"

"아이고 제법 어른티가 나도록 컸구나. 아저씨는 아빠 동창인데 아빠가 그렇게 돌아가셔서 안 됐구나. 그 심광철 씨는 숙부 되시겠네?"

"네,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아저씨들은 서로 쳐다보며 머뭇거렸다. 그리고 무겁게 아빠친구라는 분이 말했다.

"응. 주호라고 했지?  이 포클레인도 네 앞으로 되어있던데? 아저씨는 읍내 농협에 근무하는데 작년에 네 숙부가 이걸 담보로 대출을 받았어, 서류가 문제없기에 대출을 해 주었단다. 그런데 이자가 6개월이나 연체되고 변제 일도 지났는데 아직 정리가 안 돼서 이걸 차압하기로 했단다. 오늘부로 이 포클레인은 임의로 손대거나 움직일 수 없어"

주호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됐지만 무언가 잘못된 것은 확실하다는 생각을 했다. 말하는 아저씨도 침울했다. 주호가 대답을 못하고 멍하니 서있는 것을 보고 -주호야 미안하게 됐구나- 하며 포클레인 앞유리에 빨간색 종이를 붙였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통나무처럼 서있는 주호의 등을 토닥여주고 두 아저씨는 멀어져 갔다.


주호는 고개를 흔들었다. -내 포클레인을 내 맘대로 못하다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작은 아버지가 나한테 이럴 리가 없어- 주호는 작은집 식당을 향해 뛰었다. 작은 아버지의 고급 승용차가 눈에 띄었다. 본관 정문을 열고 들어갔다.

"작은아버지!"

작은 엄마가 나왔다. 눈가로 스치는 떨림을 보았다.

"작은 엄마! 작은 아빠 어디 계셔요?"

진숙은 방한칸을 쳐다보다가 어색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응. 손님이랑 어디 좀 가셨어. 아마 좀 늦을 거라 했어"     

작은 엄마는 들어오라는 말도 없이 주호를 출입구에 세워둔 채로 손님에게 가봐야. 된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주호는 가슴이 싸늘해졌다. 이럴 수는 없었다. 엄마가 여기서 일하는 동안에도, 엄마가 재혼할 때도, 엄마에게 받은 모든 돈을 맡길 때도 조카가 아니고 아들이라며 아빠처럼, 엄마처럼 생각하라고 했었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 두 분은 자신을 찬밥 대하듯 하고 있다. 포클레인에 붙은 빨간딱지, 분명히 자동차는 세워져 있는데 나가고 없다고 말하며 손님에게로 가버리는 작은엄마,    

 

주호는 집문서와 정기예금 통장은 어찌 되었는지 당장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은 엄마가 손님하고 나갔다고 말하며 바라보던 방을 쳐다보았다.  방문 위에 한자로 매실이라고 쓰여 있었다. 주호는 홀 이모가 말리는 것을 뿌리치고 매실 앞으로 갔다. 이방은 유일하게 주차장과 외부로 드나드는 출입문의 사정을 살필 수 있는 방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4억 그지, 2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