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랜만에 머슴밥 한 그릇을 다 비웠다. 그 시절 어둠도 추위도 아랑 곳 하지 않고 머리칼이 뭉개지도록 배추를 이고 날랐던 엄마를 생각하니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졌다. 밥공기를 들고 밥솥으로 가 다시 한 공기를 퍼와서는 남은 짠지찌개 국물에 말아버렸다.
“뭔 밥을 그렇게 많이 먹냐? 치 하겠다”
아버지가 걱정스러운 듯 말씀하셨다. 나는 고개도 들지 않고 밥만 먹었다. -아버지가 이 맛을 아세요? 떼돈 벌어다 줄 것처럼, 한방에 터트려 준다며 엄마가 벌어다 쌓아둔 양식 다 퍼내고, 출가외인이라 닦달하다가도 급할 때는 외갓집으로 엄마를 보내셨지요? 도시 사람들이 먹는다는 속 찬 배추 몇 포기 갔다 주고 그걸로 아홉 식구가 겨울을 나고 한 여름 까지도 넉넉한 줄 아셨죠? 아버지 밥그릇에 쌀이 들어 있다고 엄마도 자식들도 모두 쌀밥 먹는 줄 알고 사셨죠? 자식들이 밥을 굶어도 아버지 술값은 챙기셔야 했던 아버지! 아버지 같은 분은 절대로 모를 맛이지요.- 그 말이 목을 간지럽혔지만 뱉을 수는 없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께는 말대답을 못 했다. 억울해서 한마디라도 하면 매가 돌아왔고 엄마에게 애먼 불똥이 튀었다. 하룻밤이라도 편안히 잠잘 수 있기를 바라며 입을 다물어야 했다. 아버지가 부당하다는 말을 아버지 앞에서는 한마디도 못 하며 자랐다.
아이들이 다 크고 내게 고통스러운 병이 찾아왔을 때 남편은 이제 정신 차리고 장사를 돕겠다고 했다. 마침 딸의 결혼 이야기가 오가고 있을 때였다. 아버지 없는 결혼식을 치르게 할 수가 없어 못 이기는 척 남편을 받아들였다. 장사에 합류한 남편은 골병이 들 정도로 이루어온 내 장사의 권한을 갖고 싶어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통증 때문에 의지가 약해진 나는 마지막으로 한번 믿어보고 싶었다. 내가 여자라서 키우지 못한 사업을 자기가 키워 보겠다며 돈을 가져다 썼다. 모든 것을 다 할 것처럼 일을 벌여 놓고는 유지하거나 마무리하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려 한방 터트려 줄 테니까- 그 말에 덜컥 겁이 났다. 엄마의 항아리를 털어가던 아버지의 목소리로 들려왔기 때문이다.
나는 남편에게 넘겼던 권한을 거두어들이고 다시 일선에 나섰다. 그런 나에게 남편은 날마다 술로 취해 사는 것으로 반발을 했다. 아예 집에 오지 않았던 그때가 훨씬 편했지만 더 이상 어디 갈 곳도 없었는지, 내 집에서도 내 가게에서도 나가지 않았다. 그래도 남편이 시장에 함께 나온 이후로 손님들의 말투가 달라진 것을 느낀 나는 그게 남편 그늘이라고 위안을 삼았다. 집 나가 있을 때도 남편에게 받을 것이 있다며 찾아온 검은 양복의 사람들에게 돈을 물어주어야 했던 경우들을 생각하며 차라리 내게 그런 그늘이라도 되어달라는 심정이었다.
무슨 짓을 해도 절대로 변하지 않을 사람, 전생의 업보여도 다음생에 더욱 비참한 삶을 산다 해도 이제는 정말 그만하고 싶다. 아직도 천붕기택이니 출가외인이니 하는 아버지를 보면 남편에 대한 희망이 없다. 나는 식어버린 짠지 국물을 아예 후루룩 마셔버렸다.
“쟈가 뭔 일이 있구먼 짠지국물 들이마시는 거 보니께 뭔 일이 있어~”
아버지는 쯧쯧하며 거실 창가 테이블 앞 아버지의 자리에 앉아 담뱃불을 붙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