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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차순이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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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숙 Aug 17. 2023

차순이 11

공장장의 운전기사 시절

개봉동 입구에서 내린 양희는 아직 시간이 충분했지만 마음이 급해져 시장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9월 한낮의 열기와 양희의 급한 마음이 짠물이 되어 얼굴에서 가슴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시장입구에 도착했으나 금희언니는 아직 오지 않았다. 두리번거리며 기다리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작은아이를 등에 업고, 큰아이는 손을 잡고, 또 한 손엔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으로 오고 있는 공장장님 사모님이었다. 4년제 대학까지 나온 부잣집 딸의 모습이 양희가 흔히 보던 평범한 모습이었다. 저 정도 삶은 중학교 졸업도 못한 자신도 살 것 같았다. 꿈같은 대학 졸업생의 삶이 저런 모습이라면 대학도 별거 아닌가 보다 생각하며 뛰어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사모님!"

"어?  양희야! 여긴 웬일이야? 장 보러 왔어? 안내양은 할만해?"

손이 모자라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도 닦지 못하고 양희를 보고 웃으며 반겼다. 표정만큼은 언제나처럼 따듯했다. 양희가 장바구니를 받아 들자 그제야 사모님은 땀을 닦으며  양희를 앞서갔다. 야채집에서 콩나물과 두부 계란을 사며 사모님은 콩나물 한 줌 덤을 얻고 100 원만 깎아달라며 실랑이를 했다. 양희는 사모님과 공장장님의 러브스토리를 기억하며 씁쓸했다. 저 모습이 결혼시켜 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고 자살 소동으로 얻은 사랑의 모습이라니, 사랑도 그렇게 별거 아니구나 생각하며 공장장님이 결혼 전 시내버스 기사를 할 때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스물여섯 총각, 김범룡씨는 부모가 다섯 살 때 모두 돌아가셨다. 외삼촌의 도움으로 고등학교까지 졸업을 하고 대형면허증을 땄다. 자립해서 외삼촌에게 보은을 하겠다는 다짐이 있었다. 스무살에 취직하기는 어중간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꼭 치러야 하는 국방의 의무가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둘러 군대를 다녀오고 첫 취업으로 버스회사를 왔다. 그때 나이 스물네살이었다. 너무 젊고 경험이 없다고 탐탁지 않아 하면서도 부족한 기사로 고전 중이던 회사는 김범룡 씨의 입사를 최종 승인했다. 당시 버스기사들의 학력은 중졸이 대부분이었다. 대졸자는 대기업이나 무역회사 같은 곳의 영업직이나 기타 하이카라라고 불리던 직장으로 가고 중졸자는 아예 기술직이나 운전직을 택했다. 고졸자는 박쥐 같은 존재였다. 새도 될 수 없고 쥐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에서 적당히 먹고살아야 했다.


다른 기사들보다 일주일을 더 교육을 받았다. 버스경력이 전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식으로 근무를 했는데 안내양들이 추근댔다. 깔끔한 외모에 나이도 어린 총각기사 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성실하게 운행을 하여 적지 않은 승각을 태웠는데 입금액이 예상보다 적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회사가 철저히 감시체계를 가동하고 있으니 자신은 그저 자신의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3개월이 지나자 백여 명의 안내양 중 두세 번 배차가 겹치는 안내양이 여럿 있었다. 어느 날 이었다. 하루의 운행을 마치고 종점으로 들어오는데 안내양이 토큰 한 줌을 주었다.


"이거 뭐예요?"

안내양은 싱글벙글 웃으며 당연한 듯 말했다.

"오늘 손님 많이 태웠잖아요? 다들 그렇게 해요."   

  

김범룡 씨는 어이가 없었다. 자신은 그저 맡은 바를 수행했을 뿐인데 승객을 많이 태운 것하고 이 토큰하고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럼?!, 전에 앞차가 -적당히 꼬리 물지 말고 따라와- 했던 말하고, 뒤차가 -빨리빨리 좀 못가? 신빙이 놈이 벌써 해 먹냐?-라고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말로만 듣던 기사와 안내양의 부정행위가 이런 것이구나! 느끼는 순간이었다. 입금액 상위 기사가 되어 회사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는데 열심히 해도 매달 입금성적이 저조하여 경력이 부족한 탓으로 돌렸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중간에서 안내양들이 가로챘다는 생각을 하니 기가 막혔다.   

  

한 줌이면 20개는 넘을 것이다. 하루에 20개씩 한 달이면 20일만 근무해도 400개이다. 토큰 한 개가 100원, 월 4만 원, 월급이 60만원 이니까 8프로에 육박한다. 임금인상 해 달라고 데모를 해서 겨우 통과되는 것이 2~ 3프로이다. 1년에 한 번 인상되는 금액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다. 1년이면?...  임금인상과 처우개선을 위한 데모에 참여자가 전체 인원 중 20프로의 인원밖에 안 된다 하더니 이유가 있었구나! 힘들게 목소리를 높이고 잘릴 수도 있는 데모를 하느니 알아서 자신들의 임금을 챙겨갔던 거였구나!    

 

범룡 씨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도둑질이다.- 빨리 돈 모아 전셋집이라도 마련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정직하게 모은 돈으로 이루고 싶었다. 이런 식으로 부수입을 올릴 수 없다. 남들 다하는 행위라고 부정한 행위까지 용서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범룡 씨는 안내양이 내민 손을 외면하고 말했다.

"그냥 입금시켜요. 난 필요 없어요."

얼굴이 굳어진 안내양은 토큰 5개를 더 꺼냈다. 적어서 받지 않는 걸로 오해했던 것이다.

"헉!"

범룡 씨는 화가 오르는 걸 참고 덤덤한 표정이 된 안내양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난 월급만 받으면 만족해요. 남의 돈에 욕심 없어요. 그러니 모두 입금시켜요. 그리고 앞으로 내 차 탈 때는 이런 거 하지 마요"     

그 후로도 서너 번의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범룡 씨는 눈하나 깜박 안 하고 모두 입금시키라고 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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