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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차순이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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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숙 Aug 21. 2023

차순이 12

인연

 소문은 금방 퍼졌다. 기사들은 - 저자식 어린놈이 세상물정 모르네- 하며 왕따를 시켰고, 안내양들은 서로 그차에 타고 싶어했다. 범룡 씨 차에 배차받은 안내양들은 껌과 박카스를 사들고 왔다. 안내양이 비번인 날 아이스크림이나 빵을 사가지고 노선에서 기다리다 타기도 했다. 받지 않고, 괴롭히지 않고, 승객을 많이 태워 회사 측으로부터 잔소리를 듣게 하지 않는다고 고맙다는 표현이었다. 범룡 씨는 껌도 자기한테는 안 사와도 된다고 했는데 안내양들은 오히려 뭐라도 더 사주려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범룡 씨는 삥땅으로 샀을듯한 껌한개도 일절 씹지 않았다. 차 안에는 껌이나 박카스가 몇 개씩 쌓였다가 자신이 비번인 날 대타기사가 마시거나 가져갔다. 힘들게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잠 못 자고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서 번 돈으로 오히려 당연한 일을 고맙다고 표현하는 안내양들이 안쓰러웠다. 도대체 기사와 안내양의 부정행위가 어디까지일지 궁금했지만 안다고 해도 자신의 힘으로는 막을 방도가 없어 눈감고 귀 막고 살기로 했다.   

  

설상가상 안내양들은 무언가 사주려는 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비번날 같이 밥 먹자고 메모를 던져놓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 같은 버스회사에 근무하면서 사적으로 만나는 것도 밝혀지면 퇴사사유가 된다. 둘이 한차에 근무할 경우 부정행위를 막을 수 없다고 회사는 판단하는 것이다. 범룡 씨는 오래 근무하고 싶었다. 어차피 운전하는 것은 같을진대 이곳저곳 옮겨 다닐 마음이 없었다. 그 시간에 하루라도 더 열심히 일하고 부지런히 모아서 전셋집이라도 얻어 안내양들처럼 억순이 말고 순한 여자 만나 결혼하고 싶었다. 안내양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이유였다. 범룡 씨는 철저하게 외톨이였다. 젊은 놈이 눈치가 없다고 수군거려도 비번 안내양들이 운행 중인 자신의 차를 타고 하루종일 내리지 않아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다행히 성실한 그를 회사에서는 잘 보아주었다. 입사 2년 후 모범기사가 되었고 막 시행되던 좌석버스에 제일 먼저 고정배차를 주었다. 좌석버스는 앞쪽에 출입문이 하나 있고 승객들이 스스로 요금을 넣고 거스름돈을 받아가는 시스템이 적용되었다. 좌석버스 수당도 5만 원이나 되었다. 삥땅 없이 정직하게 살아온 날의 보상처럼 수당으로 범룡 씨의 삶을 채워주었다. 

    

좌석버스는 일반버스보다 요금은 1.5배였다. 그러다 보니 승객들도 멀리 가거나 편안히 이동하려는 대체적으로 좀 있는 사람들이 탔다. 그 차를 운행하고 1년 만에 사모님을 만나게 된다.   

       

김범룡 씨가 근무하던 회사는 좌석버스 10대를 승인받았다. 30분마다 배차되는 좌석버스는 운행거리도 길어서 왕복 3시간을 돌았다. 어느 때는 첫차로 6시에, 어느 때는 막차로 8 시에, 또 어느 때는 회차종점에서 첫차나 막차에 배차받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들쑥날쑥한 운행시간 때문에 한번 만났던 승객을 연이어 만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한 여대생이 자꾸만 눈에 띄었다. 그저 그런 우연도 있으려니 했다. 기억을 더듬어 그 여대생이 자기차에 타기 시작한 것이 두 달쯤 되었다고 생각할 때, 고척동 입구 정류장에 들어섰는데 단정한 노인과 40대의 아주머니와 50대 초반의 남자 그리고 그 여대생이 탔다.  요금은 50대 남자가 냈다. 가족이 일이 있어 어딘가를 가나보다 했다. 다른 사람들이 몇 명 더 타고 차를 출발시킬 때 운전석 뒤에 앉아있던 노파가 말을 걸어왔다.


"총각!  몇 살 이유?"

뜬금없는 질문에 룸미러를 바라보니 승객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해있고 아까 함께 탄 여대생의 일행도 모두 자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대생은 수줍게 웃고 있었고 40대 아주머니와 50대 남자는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왜 그러세요? 제가 뭘 불편하게 해 드렸나요?"

노파는 손까지 저으며 말했다.

"아녀 아녀, 저것이 우리 막내딸인디..."

노인도 썩 내키지 않는지 입맛을 다시며 말을 흐렸다.     

여대생이 말을 이었다. 말하는 것으로 봐선 완전 철부지였다.

"아저씨 비번날 우리 엄마 좀 만나요"

황당한 상황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일 때 50대 남자가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근무 중에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합니다. 저 애는 제 처제인데요. 기사님과 결혼시켜 달라고 난리를 쳐서 미안하게도 회사에 전화 걸어 아직 미혼인 것을 확인하고 오늘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네요. 차에서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 것이니 한번 만나서 이야기 좀 합시다. 비번날 전화 좀 주세요"     


범룡 씨는 어제 꾼 꿈을 생각했다. 실루엣만 보이는 엄마가 넝쿨달린 호박 1덩이를 건네주고 사라져 갔다. 엄마의 호박과 여대생가족의 만남, 분명 무슨 연관이 있을 것 같았다.     


일을 마치고 범룡 씨는 남자가 준 명함을 자세히 보았다. ㅇㅇ산업 대표 이ㅇㅇ,     

사장의 처제이며 곱게 늙은 노부인의 딸인 여대생이 결혼을 시켜달라고 가족을 데리고 자신을 찾아왔다. 그런 상황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군대를 제대하고 인사차 들렀던 외삼촌은 외숙모에게 참한 색시감 좀 알아보라고 했다. 결혼까지 시켜야 누나나 매형에게 떳떳할 것 같다고... 찾아보고 연락 준다던 외삼촌은 아직 연락도 없다. 지난 3년간 모은 돈으로 전셋집은 어림도 없어 결혼을 계획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여대생이라니 너무 부담스러운 일이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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