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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차순이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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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숙 Aug 31. 2023

차순이 15

운전기사 오병운의 포부

며칠 후 비번날 친구를 만나 남산에 갔다가 우연히 친구와 함께 있는 오병운 씨를 만나게 되었다.

 "어! 삥땅?"

금희언니는 부끄러워 돌아섰다. 오병운 씨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달아나면 회사에 다 불어버릴 거라며 이왕 만났으니 밥이라도 같이 먹자고 불러 세웠다. 뭐 저런 치사한 놈이 있냐며 친구와 눈짓을 주고받다가 내키지 않는 걸음을 돌렸다. 얼떨결에 남자둘 여자 둘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데이트를 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때 오병운 씨는 자신의 포부를 말했다.

"저는요. 조합장이 될 거예요. 그리고 어떻게든 삥땅이 사라진 근무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정직한 안내양들이 의심받고 기사들 횡포에 시달리는 일 없도록 환경을 개선해 볼 생각입니다. 금희 씨가 안내양 생활 오래 하고 삥땅의 경험도 있으니 저 좀 도와주세요." 남자의 포부 같은걸 처음 듣는 금희언니는 오병운 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괜찮은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병운 씨는 입사이력서에 고졸이라고 썼다. 학력이 높으면 노동운동등으로 회사를 시끄럽게 한다고 사주 측에서 머리를 쓴 방법 중 하나가 말단직에 고학력자를 채용하지 않는 거였다. 바로 오병운 씨 같은 같은 사람을 거르기 위한 규정이었는데 목적이 있는 사람들은 학력위조라는 방법으로 규정을 유야무야 시키고 입사를 하였다. 그것도 회사가 가장 골칫거리로 생각하는 노동운동을 목표로 입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병운 씨의 친구도 다른 버스회사에 기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대학 동기이면서 노동환경개선의 필요성을 느낀 두 사람은 직접 일선에 나서서 버스회사의 환경부터 바꿔보자고 의기투합한 것이다. 같은 목적으로 같은 일을 하는 두 사람은 종종 이렇게 만나서 문제점들을 논의하고 방법을 찾기 위한 고민을 한다고 했다.   

  

그날 오병운 씨는 금희언니에게 기사나 회사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이야기들을 들려달라고 했다. 금희언니는 정직하고 싶어도 기사들의 횡포와 회사가 만만한 안내양만 의심하고 처벌하는 분위기가 결국은 요금에 손을 대게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자신의 경우를 예로 들며 많은 안내양들이 그렇게 적응하며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고백처럼 들려주었다.

    

오병운 씨는 일단은 현 조합장을 도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개선해 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회사에 필요한 요구를 하기 위해선 정직해야 할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니 기사나 안내양들의 삥땅부터 사라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희언니는 오병운 씨의 이야기에 완전히 매료되어 후배들이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건전한 직장이 될 것을 기대하며 가슴이 콩콩거리는 것을 느꼈다. 훈남에 학력도 좋고 의지도 대단해 보이는 이 남자가 벌써 좋아지고 있었다.  

   

그날부터 금희언니는 안내양을 대상으로 삥땅근절의 필요성을 이야기했고 자신부터 모범을 보였다. 기사들 졸지 말라고 주는 껌도 자신의 개인돈으로 샀다. 주지 않는다고 횡포를 부리는 기사들은 오병운 씨가 따로 만나 설득했다. 그러나 워낙에 깊이 뿌리 박힌 기사와 안내양의 삥땅은 쉽게 근절되지 않았다. 경력이 많은 1160호 기사는 젊은 놈이 어른을 가르친다고 멱살을 잡기도 했다. 쉽지 않은 그 길을 함께 하면서 오병운 씨와 금희언니는 서로에게 깊은 애정이 생겼다.

    

19살에 우리 회사에 입사한 금희언니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7년을 근무했다. 다음 달이면 만 7년이 되고 나이는 스물여섯이다. 그동안 시골부모님을 도와 둘째 동생 대학 입학금까지 마련해 주느라 두 사람은 근무 중에는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그리고 10 월 금희언니의 퇴사날짜와 결혼식날짜를 잡았다. 퇴직금을 받아 결혼자금으로 쓸 계획이었다. 결혼하면 오병운 씨 뒷바라지만 할 것이라 했다. 오병운 씨가 조합장에 당선되고 근무환경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할 수 있도록 내조할 것이라 했다.  


양희는 금희언니의 이야기에 얼마 전 읽었던 소설 속으로 빠져든 듯했다.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사회와 싸우다가 뇌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공순이가 주인공인 이야기였다. 자신도 기회가 되면 사회의 부조리를 개선하는 일에 앞장서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금희 언니와 오병운 씨가 가슴 떨리도록 아름답게 느껴졌다.

   

"양희야 그러니까 조금만 힘내 그리고 지금처럼 정직하게 살아 정 힘들 때는 아저씨께 말하면 중재해 주실 거야 조합장만 되면 회사 측에도 말해서 입금액만 가지고 안내양을 의심하는 그런 일은 없도록 해주실 거야. 기사들의 횡포도 서서히 사라질 거고 엊그제 네가 당한 그런 일도 다시는 없도록 할 거야, 언니가 그만두어도 아저씨가 계시니까 믿어도 돼 알았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면 이런 기분 일까? 이제 살았다는 기분! 다른 사람들이 다 의심해도 금희언니는 자신의 정직함을 믿어준다는 확신이 생겼다. 단 한 사람 일지언정 자신을 믿어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힘이 생겼다.  눈치껏 적응하며 살라던 소영이의 말이 귓불에 붙어있는 것 같아 손으로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참고 : 16편부터 25회, 마지막 편까지는 매거진/ [소설모음 ㅣ 짧지만 긴 여운] 에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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