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탐방기

백두산이여! 천지여!

by 강현숙

우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 백두산에서도 천지를 보기 위한 순례객들의 행진은 줄을 잇는다. (보통은 관광객이라 칭하지만 난 순례객이라 말하려 한다.) 국토의 허리가 남북으로 두 동강이 나서 서로 다른 이념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남한 사람들의 백두산 탐방길은 참으로 험난하다. 그 험난한 여정을 기꺼이 감수하며 해발고도 2750미터의 백두산 정상 천지 탐방을 목표로 여행길에 오르니, 그 여정은 가히 순례길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우리는 백두산이라 부르지만 중국은 장백산이라 불러서 온전한 백두산을 다녀오기엔 아직은 요원한 상태임을 느낀다.

2019년 7월, 나의 백두산 순례길은 ‘백두산 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 칭하는 노선, 청주-위해-연길-이도백하-를 경유하여 중국 영토에 속해 있는 서파와 북파를 탐방하는 3박 4일 동안의 여정이었다.

충북 청주에서 중국 위해까지 비행기로 1시간, 다시 위해에서 연길까지 2시간, 그리고 이도백하까지 버스로 3시간 30분, 기다리는 시간은 빼고도 6시간 이상을 달려서 호텔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6시 30분에 호텔을 출발하여 백두산 서파를 향해 가는데, 관광버스로 2시간을 가고, 다시 셔틀버스 1시간 20분, 환승하여 또 1시간 10분, 세 번이나 갈아타며 4시간 30분을 차로 이동한 후에야 서파 천지 아래에 도착했다. 비행기 타고, 자동차 타고, 이동하는 순간의 시간만 총 12시간 정도를 달려서 도착한 곳이다. 천지 아래엔 1412개의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이 계단은 누구라도 걸어야 한다. 함께한 일행 11명과 각처에서 온 한국인과 중국인 등 수많은 인파가 이 계단을 걸어서 올랐다. 그들의 한 가지 목표는 천지의 '親見'이었다.

전날 밤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백두산 관광의 하이라이트는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백두산 천지'를 보는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날씨가 걱정된다. 비가 오면 구름과 안개 때문에 천지의 모습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동 중에라도 비가 멈추고 천지의 환한 ‘용안’을 친견할 수 있기를 바라는 염원을 가득 담고 한 계단 한 계단, 一步一拜하는 마음으로 천지를 향해 계단을 올랐다. 1412번의 나아감과 간절한 기도가 있은 후 만난 계단 끝에는 '37호 경계비'가 세워져 있다. 바로 중국과 북한이 백두산을 나누어 가진 경계지점이다. 경계비 오른쪽은 북한령으로 그곳으로는 갈 수가 없다. 철조망으로 분리된 중국령의 경계비 왼쪽으로만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우리의 영산, 백두산을 남의 땅을 통해서만 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 마음마저 무겁다.


천지를 보기 위해 모여 있는 사람들, 그사이에 나도 있다.

혹시나 백두산의 ‘신령’이 있다면, 멀리 돌아서 한번 뵙자고 찾아온 이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다녀가면서 기도하였을 수많은 바람들을 들어주시기를 기도하였다. 그리고 당장은 천지를 뵙게 해 달라는 기도를 빼놓지 않았다. 천지를 보지 않고서는 백두산에서 푸대접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것이기에 기도는 조금 간절해졌다.

그러나 매정한 백두의 천지 신은 이번에는 절대로 안 되겠는지 끝내 한 귀퉁이의 모습도 허락하지 않았다.

허무한 마음으로 계단을 내려오며 백두산에서만 볼 수 있는 야생화를 감상하고 7월인데도 아직 녹지 않은 잔설 사이로 졸졸 흐르는 차가운 물에 손을 담가 보며 민족의 영산 백두를 느껴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아직은 다음날 북파의 계획이 있었으므로 실망보다는 기대를 안고 하산하며 '금강대협곡'을 관광하였다. 수십 미터의 깎아지른 듯한 협곡엔 화산이 품어내고 물과 바람이 빚어낸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저마다의 기상을 뽐내고 있었다. 수백 년 동안 사람의 발길을 허용하지 않았던 숲엔 이름 모를 거대한 나무들과 잡초들이 스스로 질서를 지키며 생멸하고 있었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만들어 낼 수 없는 풍경에 백두산에 대한 경외심은 커져갔고, 자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또 감탄하며 호텔로 돌아왔다.


금강대협곡의 일부


전날부터의 이동으로 살짝 지쳐 있었던 몸은 다음날의 기대감으로 아직 힘을 내고 있었다. 내일 북파에서는 '꼭 천지가 친견을 허락할 것' 이라며 일행들끼리 서로 술잔을 부딪히며 발원을 하고 짧은 취침을 하였다.

다음날 새벽 5시, 기상을 하여 식사를 하고 산행 준비를 마치고 차량으로 오니 버스는 이미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6시 30분 약속한 정시 간에 출발하여 버스로 2시간 셔틀버스로 40분을 달렸다. 호텔에서 출발할 때 하늘이 개인 듯하여 어제보다 더 큰 기대를 안고 출발하였는데, 북파의 장백폭포와 천지의 갈림길에 도착하니 빗줄기는 실망스럽게도 더욱 굵어지고 있었다. 가이드의 제안으로 장백폭포를 먼저 가기로 했다. 장백 폭포를 다녀오는 동안에 어쩌면 하늘이 개일 지도 모른다는 마지막 기대였다.


중국 쑹화강의 원류이며 북파의 빼놓을 수 없는 명소인 '장백폭포'는 천지의 물이 천문봉과 용문봉 사이를 흘러 68미터의 수직 암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폭포이다. 힘차게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와 폭포 옆으로 설빙이 된 하얀 눈의 형태가 마치 한 마리 날개 짓 하는 학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장대한 모습의 폭포는 보는 이들의 가슴을 울렸고, 그 울림이 끝없이 탄성으로 쏟아져 나왔다.

장백폭포 아래는 온천 군락지도 있다. 폭포의 힘찬 물줄기는 한여름에도 손을 담글 수 없을 만큼 차갑다고 한다. 그런데 그 물이 흐르는 바로 옆에선 계란을 익혀 낼 정도의 뜨거운 온천수가 용천하고 있다. 마치 기골이 장대한 씩씩한 남편과 뜨거운 모정을 간직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과 같다. 온천수가 솟아오르는 곳에 수증기가 장악한 모습은 자연이 아니면 빚어낼 수 없는 신비로운 경치였다.

폭포 옆으로 녹지 않은 눈과 어우러진 장백폭포는 마치 날개를 편 학의 모습이다.

온천물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확인이라도 해 주려는 듯, 온천 아래 매점에선 온천수에 익힌 계란을 팔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백두산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이라도 되느냐 손마다 삶은 계란이 들려 있다. 나 역시 백두산 표 삶은 계란을 안 먹을 수 없었다. 보통의 삶은 계란은 겉부터 익기 시작해 안으로 익는 반면 이곳 온천수에 삶은 계란은 속부터 익기 시작한다. 그래서 계란 노른자위는 완숙이고 흰자위는 반숙이다. 무언가 특별함이 있기는 한 것 같다. 장백폭포의 위용 탓인지, 특별한 기분 탓인지, 폭포 아래에서 먹는 계란은 태어나 처음 맛보는 듯한 느낌의 별미였다. 장백폭포의 감동을 가슴에 품고 다시 천지를 향하여 출발하기로 하였다. 빗줄기는 야속하게도 더욱 굵어져 있었다. 7월의 날씨가 무색하게 찬바람이 빗물과 함께 옷을 헤집고 들어온다. 곳곳에 백두산의 추위에 대비하지 못하고 온 순례객들을 위하여 두꺼운 코트를 대여하고 있는 곳이 여럿 있는 것으로 보아 백두산의 추위는 어제오늘만의 급작스러운 변화는 아닌 것으로 보였다.

천지를 향하는 마음이 빗줄기에 젖은 듯 무겁게 느껴진다. 가이드는 천지의 날씨는 한 시간에도 수십 차례 변하여 잠깐씩 천지를 보여주기도 한다며 기대를 심어준다. 북파에서 오르는 천지, 천문봉을 향하는 소형 버스들이 셀 수도 없이 많다. 백두산을 찾는 순례객들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이다. 9인승 버스에 몸을 실으니 곧장 망설임도 없이 천문봉을 향해 달린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S자 코스로 이어진 길을 소형 봉고 차량들이 줄지어 오르고 줄지어 내려온다. 아차! 하는 순간이면 다른 세상으로 갈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로 차량에 몸을 맡겼다.

북파, 천지에서 내려오는 차량들, 너무 무서워서 사진도 제대로 찍을 수 없었다.
천지는 못 보고 이름만.......


30분 정도 쉼 없이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오니 천지는 바로 앞이다. 천지의 여러 코스 중 가장 먼저 길을 내었다는 북파코스는 천지를 가장 힘 안 들이고 만날 수 있는 코스라고 한다. 몸은 힘이 안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심장은 어디서도 경험하지 못한 쫄깃함을 맛보았던 시간이었다.

차에서 내리니 더욱 세찬 빗줄기가 우리를 맞이한다. 기도하며 천지를 향해 걸었다. -잠깐만 뵈올 수 있게 해 주소서- 간절하지 않을 수 없는 기도였지만 천지의 신령님께선 끝내 응답하지 않으셨다. 안개로 커튼을 해 닫아놓은 천지의 문이 바람에 슬쩍 흔들리며 저 아래 천지로 이어진 바위들을 보였다 감추었다 하며 애간장을 녹인다. 끝내는 손가락이 얼어붙는 지경이 되어서 돌아와야 했다.

안개로 가려진 푯말 저 아래가 천지이다.


조상 3대가 덕을 쌓아야 뵈올 수 있다는 주변인들의 말에, 오늘 이곳에 온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다 턱없는 사람들일까 생각하며 하산하는 길은 허무감도 아쉬움도 이미 사라진 뒤였다. 백두산 천지를 보기 위해 할애한 4일간의 시간 동안 비가 내렸다. 어딘가 여행을 계획할 때 날씨 걱정은 하지 않을 정도로 내가 필요한 시간에는 항상 궂었던 날씨도 개이고 해서 덕이 없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었다. 그런 교만함을 大德至尊이라 불리는 백두산에서 크게 혼나고 온 느낌이다.

우리 민족의 영산이면서, 남의 나라를 통해야만 갈 수 있는 백두산은 한번 가기가 쉽지 않다. 통일이 된다면 설악산이나 한라산처럼 배낭 메고 두발로 백두산을 느끼며 다녀오고 싶다. 백두산 정상에 펼쳐진 아름다운 천지의 모습을 꼭 한번 직접 보고 싶다. 그러나 세월 속에 다리의 기운도 빠져 버릴 것 이기에 나중을 기약할 수가 없으니 남의 나라를 통한 여정이라도 한번 더 시도해 보고 싶다. 올해 코로나 19가 창궐하지 않았다면 남편과 함께 가려고 했던 계획이 무산되어 아쉽지만, 그동안 부족한 덕을 쌓을 시간을 번 것이라 여기며 여행이 자유로워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하나로 이어져 굳건한 역사로 다시 쓰이는 날, 가장 먼저 백두산 천지로 달려가 안기고 싶다. 내 다리에 기운이 남아 있을 때 그날이 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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