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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서재 강현욱 Aug 03. 2022

타인을 향한 연민. 그 빛과 어둠.


오후 다섯시.


'시되시면, 오늘 저녁 사주세요.'

'그래. 그러자.'


일터 후배인 J의 갑작스러운 짧은 메세지가 날아들었지만, 반가움보다는 손가락 끝으로 짚어지는 미묘한 여백들에서 알 수 없는 불안감과 거부할 수 없는 슬픔이 짙게도 느껴진 왜였을까. 제안은 강요되어졌고, 난 응할 수 밖엔 없었지만, 밥이 아닌 술을 먹게 될 것만 같아서, 차를 두고 약속 장소로 발걸음을 옮겨야 하였다. 시끌벅적한 일상의 이야기가 아닌 영화보다도 영화같은 심연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만 같아서 약속 장소에 들어가기 전 연거푸 담배 두 개비를 입에 물어야만 하였다.  불필요하고, 흐리멍덩 조언 보다는 가만히 들어주는 일이 나을 것 같아서, 입을 다물고, 귀를 연 채, 지긋이 그를 바라보아야만 하였다. 술잔을 잡은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이윽고 그는 울면서 술을 마셨다. 떨어진 눈물들이 찰랑거리는 하이볼을 희석시켰는지, 그의 목으로 술은 숨가쁘게도 흘러들었다. 그의 이야기는 슬픔과 상실이었고, 소설같은 현실이었다. 타인이 살아가는, 겉으로 보았을 때 아름다워 보이는 삶, 그 이면에는 스스로 목구멍으로 삼켜버리는 이상, 누구도 바라볼 수 없는 까아만 어둠이 자리하는 듯 하였다. 지만 그가 부도덕해 보이거나, 처연해 보이지는 않았다. 단지 그가 조금이라도 빨리 슬픔에서 빠져나와 그의 일상을 지켜나가길 바라였다. 그와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셨고, 마하 10의 속도만큼이나 나의 일상과는 거리가 있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함께 보았다. 내일 출근해야 하였지만, 우리는 그렇게 밤을 부여잡고서, 시간에 올라타 슬픔을 지워나갔다. 지워내지 못한 슬픔들이 빗물에 섞여 떠돌아 다녔지만, 우리는 씩씩하게도 놓아지지 않는 안녕을 그려내었고, 고맙다는 말을 그 자리에 단단히 세워둔 채, 그는 집으로 돌아갔다. 누군가의 뒷모습을 응시하는 일은 여전히 달갑지가 않았다. '괜찮아.' 라며. 그를 향해 조용히 읊조렸다.

그치지 않을 것만 같은 비가 내렸다.


끊어내지 못한 숙취의 꼬리를 달고서 회색빛 건물들 사이를 눈을 감은 채, 출근을 하였다. 빌딩의 창에 비친 검은 하늘이 낮과 밤의 분간을 난해하게 하였고, 덕분에 나의 무거운 존재가 흐릿해 보일 듯 하여, 별것 아닌 안도감을 주머니에서 꺼내어 볼 수 있었다. 인사기간이다 보니, 일터에서는 숱한 좌절과 분노, 슬픔의 말들이 뒤섞여 나의 문을 두드렸다.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이 자꾸만 나의 창을 넘어오려 하였고, 듣고 싶지 않은 말들이 문고리를 흔들어 대었다. 창을 열 수 밖에 없는 나는, 쏟아지는 말들을 주워 담기가 버거웠고, 주워 담은 말들은 무거웠다. 머리는 새하얗게 되어갔고, 어느새 까만 밤이 눅진한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일터 옥상으로 오르는 차가운 시멘트 계단 위로 거무스름한 적막이 피어나고 있었고, 열리지 않을 듯 보이는 육중한 철제 문을 힘겹게 밀어내었다. 난 그냥 숨을 쉬고 싶었다. 큰 숨을 들이키며, 담배 한개비를 꺼내 물었고,  흩어지는 희뿌연 담배연기와 길게 늘어지는 묵직한숨은 여린 빗줄기를 타고서 나타났다 사라져가길 반복하였다. 타인을 향한 연민인지, 나에 대한 연민인지, 어쩌면 다른 형태의 감정인지. 형체를 알 수 없는 감정들이 타인의 이야기를 타고서 내 귓가에 소곤거렸다. 베어물린 달이 미약하게나마 도시를 밝혀주고 있었지만, 도시의 고독함은 진한 그림자가 되어갔다. 각자의 등에 짙고도, 까아만 그림자들이 비에 젖어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 보였다.


연민의 사전적 정의는 '타인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 술되어 있었다. 연민의 정의에는 타자성이 어느새 내포되어 있었기에, 연민이라는 감정이 홀로 서게 되면, 관음증적인 자기 안도감으로 흘러갈 가능성을 다분히 내재하고 있는 듯 보였다.  연민은 정의, 사랑, 헌신 등의 타인지향적인 단어들과 문장을 구성할 때야 비로소 세상을 향해 반짝거리는 귀한 감정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J를, 또는 인사상담을 하기 위해 나를 찾아온 이들을 연민하였던가? 아니, 나는 그들을 연민할 자격이 있는가? J를 후배로서 좋아하는 감정에 더해진 나의 연민은 사람의 온기가 되어 그를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이 될 수 있을 듯 하였다. 적어도 그날 밤의 시간은 그러해 보였다. 또한 인사상담을 하러 온 그들에게 갖게 되는 연민에 더하여, 그들이 처해진 조건의 처연함을 지워주려는 노력이 있다면, 내가 매만지는 안에서 인간다움이 피어났고,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연민을 갖게 되는 듯 하였다.

하지만 단순한 연민만이 느껴질 때이면, 공허함이 담배연기를 타고, 심장을 채워갈 뿐이었다. 공허함은

빠알간 눈동자를 굴러가며, 내가 연민할 자격조차 

있는가?라는 물음표를 삭막한 허공그려나갔고,

결국 질문에 대한 선명한 마침표를 찍어내지 못한 채,

나는 힘없는 줄임표를 이어나갈 뿐이었다.

타인의 고통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겨지고,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 불씨가 밝혀지 않을 때,

연민은 결국 스스로에 대한, 그리고 자신을 위한

안도감과 만족감으로 치환되볼품없는 감정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볼품없는 감정이

되어버리는 치환의 과정은 오늘도 내 안에서 

숱한 화학적 반응을 만들어내며, 꿈틀거리고 있음을

또한 부인할 수 없었다. 우리는 타인에게 얼마만큼의

거리를 갖고 있을까? 타인이기에 상당히 멀리 있다

여겨지는가? 어쩌면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는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를 응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타인이 가진 연민의 근원인 슬픔의 발원지 마저도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이어져 있음을 가끔씩,

아니 자주 잊은 채, 삶을 살아간다. 오늘도, 내일도.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 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을 증명해 주는 셈이다. 따라서 연민은 

 어느정도 뻔뻔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 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다.' -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중. -


불이 꺼진 평일의 시골서재와는 달리, 주말의 시골 

서재는 깊은 밤에 안겨 있었지만, 잠들 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느껴졌다. 멀리 먹구름들이 하늘을

삼키며, 울어오고 있었기에 불을 끄고 싶지 않았다. 

세상의 슬픔들을 가져다가 모두 쏟아내 버리려는 듯,

까만 구름들은 며칠째 지칠 줄 모르고 울고 있었다. 

류동지가 선물해준 '김현' 선생님의

'행복한 책읽기'라는 책을 펼쳤다. 그가 읽은 책들에

대한 짧은 서평들이 담긴 일기형식의 책이었다.

그가 읽은 책들 중 내 음에 닿는 책들을 나 또한

읽어보려고 메모해 두었다. 책을 통해 영혼을

확장시키고, 타인의 세상에 발을 내딛어 보는 일.

내가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이다. 타인의 눈으로

삶을 바라보고, 나의 일인 기뻐하며, 슬퍼할 줄 아는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일, 내가 책을 읽는 이유이다.

부디 내가 만들어낸 연민의 방향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닌, 타인을 향한 것이기를 바래보았다. 그리고

쓰는 일은 영원을 살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생각과 감정들을 사라지지 않게 문장으로

각인시키고, 그래서 언제든 현재로 데려와

나의 시간을 확장시키는 일.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이다. 부디 오늘의 글이 좀 더 인간다운 연민을

가진 미래의 내가 될 수 있도록 언제든 소환되어지기를

바래보았다. 


잠들기 전, 친구 L이 선물해준 온더락 잔에 어울리지

않는 와인을 채워보았다.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꼭 맞는 옷처럼 보였다. 내가 좋아하는 브런치의 

'이창훈' 작가님의 시집, '너 없는 봄날, 영원한 꽃이

되고 싶다.'를 읽으며, 친구 L의 마음을 곁에 누였다. 

시 한편을 시골의 밤하늘에 띄워보았다.

그리고 느꼈다. 반짝거리며 빛나는 사람온기들을.


'살아오면서

 살아가면서

 결핍이란

 늘 이 생을 따라다니는 그림자였지.


 부족함이란 어쩌면 영원한 환상

 멈추어 서서 뒤돌아 보며

 정말 참회해야 할 일이란


 나의

 당신의

 우리의 가슴안에

 사랑이 없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유일한 가난'

 - '이창훈' 시인, '가난에 대한 사색' -


내일은 무임금 노동자 두명이 시골서재에 방문하기로

하였다. 치열하고도,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야 한다.

치열하고도 치밀하게..근데 잠이 쏟아진다. 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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