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후배인J의 갑작스러운짧은 메세지가날아들었지만,반가움보다는 손가락 끝으로 짚어지는미묘한여백들에서알 수 없는 불안감과 거부할 수없는 슬픔이 짙게도 느껴진건 왜였을까.제안은강요되어졌고, 난 응할 수 밖엔 없었지만,밥이 아닌술을 먹게 될 것만 같아서, 차를 두고 약속 장소로 발걸음을 옮겨야 하였다. 시끌벅적한 일상의이야기가 아닌 영화보다도 영화같은 심연의 이야기를 들어야할 것만 같아서 약속 장소에 들어가기 전 연거푸담배 두개비를 입에 물어야만 하였다. 불필요하고, 흐리멍덩한 조언 보다는 가만히 들어주는일이 나을 것 같아서,입을 다물고, 귀를 연 채, 지긋이그를 바라보아야만 하였다. 술잔을 잡은 손은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이윽고 그는 울면서 술을 마셨다.떨어진 눈물들이 찰랑거리는하이볼을희석시켰는지, 그의 목으로 술은 숨가쁘게도흘러들었다.그의 이야기는 슬픔과 상실이었고, 소설같은 현실이었다. 타인이 살아가는, 겉으로 보았을 때 아름다워 보이는 삶, 그 이면에는 스스로 목구멍으로 삼켜버리는 이상,그 누구도 바라볼 수 없는 까아만 어둠이 자리하는 듯 하였다.하지만 그가 부도덕해 보이거나, 처연해 보이지는 않았다. 단지 그가 조금이라도 빨리 슬픔에서 빠져나와 그의 일상을 지켜나가길 바라였다.그와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셨고,마하 10의속도만큼이나 나의 일상과는 거리가 있는영화관에서영화를 함께 보았다.내일 출근해야하였지만, 우리는 그렇게 밤을 부여잡고서, 시간에 올라타 슬픔을 지워나갔다.지워내지 못한 슬픔들이 빗물에 섞여 떠돌아다녔지만, 우리는씩씩하게도놓아지지 않는 안녕을 그려내었고, 고맙다는 말을 그자리에 단단히세워둔 채, 그는 집으로 돌아갔다.누군가의 뒷모습을 응시하는 일은여전히달갑지가 않았다.'괜찮아.' 라며. 그를 향해 조용히 읊조렸다.
그치지 않을 것만 같은 비가 내렸다.
끊어내지 못한 숙취의꼬리를 달고서회색빛 건물들사이를눈을 감은 채, 출근을 하였다.빌딩의 창에 비친검은 하늘이 낮과 밤의 분간을 난해하게 하였고, 덕분에 나의 무거운 존재가 흐릿해 보일 듯 하여,별것 아닌안도감을 주머니에서 꺼내어볼 수 있었다.인사기간이다보니,일터에서는 숱한 좌절과 분노,슬픔의 말들이 뒤섞여나의 문을 두드렸다. 알고싶지않은 이야기들이 자꾸만 나의 창을 넘어오려 하였고,듣고싶지 않은 말들이 문고리를 흔들어 대었다.창을 열수 밖에 없는 나는, 쏟아지는 말들을 주워담기가 버거웠고, 주워담은 말들은 무거웠다. 머리는 새하얗게 되어갔고, 어느새 까만 밤이 눅진한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일터 옥상으로 오르는 차가운 시멘트 계단 위로 거무스름한 적막이 피어나고 있었고, 열리지 않을 듯보이는 육중한 철제 문을 힘겹게 밀어내었다. 난 그냥 숨을 쉬고 싶었다.큰 숨을 들이키며, 담배한개비를 꺼내 물었고, 흩어지는 희뿌연 담배연기와 길게 늘어지는 묵직한 한숨은 여린 빗줄기를 타고서 나타났다 사라져가길반복하였다.타인을 향한 연민인지, 나에 대한 연민인지, 어쩌면 다른 형태의 감정인지. 형체를알 수 없는 감정들이 타인의 이야기를 타고서내 귓가에 소곤거렸다. 베어물린 달이 미약하게나마도시를 밝혀주고 있었지만, 도시의 고독함은 진한 그림자가 되어갔다. 각자의 등에 업힌 짙고도, 까아만그림자들이 비에 젖어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 보였다.
연민의 사전적 정의는 '타인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는마음'이라 기술되어 있었다. 연민의 정의에는 타자성이 어느새 내포되어 있었기에, 연민이라는 감정이 홀로 서게 되면, 관음증적인 자기 안도감으로 흘러갈 가능성을 다분히 내재하고 있는 듯 보였다. 연민은 정의, 사랑, 헌신 등의 타인지향적인 단어들과 문장을 구성할 때야비로소 세상을 향해 반짝거리는 귀한 감정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J를,또는 인사상담을 하기 위해 나를 찾아온 이들을연민하였던가? 아니,나는 그들을 연민할 자격이있는가?J를 후배로서 좋아하는 감정에 더해진나의 연민은 사람의 온기가 되어 그를 버틸 수 있게하는 힘이될 수 있을 듯 하였다. 적어도 그날 밤의시간은 그러해 보였다. 또한 인사상담을 하러 온 그들에게 갖게 되는 연민에 더하여, 그들이 처해진 조건의 처연함을 지워주려는 노력이 있다면,내가 매만지는 일 안에서 인간다움이 피어났고,나스스로도 만족스러운 연민을 갖게 되는 듯 하였다.
하지만 단순한 연민만이 느껴질 때이면, 공허함이담배연기를 타고, 심장을 채워갈 뿐이었다. 공허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