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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서재 강현욱 Sep 08. 2022

태풍을 닮은 너와 지켜낸 나.


태풍이 다가온다 하였다.

이미 결정하였다는 듯, 방향을 바꾸면서까지 온전한 힘을 유지한 채, 슬픔들을 이곳에 쏟아내려 하였다. 뉴스를 보지 않아도,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아도, 곤두선 나의 신경세포들은 대낮의 회색빛 하늘을 보며, 르르 떨고 있었다. 그토록 아주 낮게, 그리고 깊게, 그렇게 나의 귀에, 소곤거렸다. 태풍이 조금씩 다가온다고, 버틸 수 있겠느냐고.


9. 3. 토요일. 저녁 여섯시.

그는 대만 아래에서 마음을 정한 듯 하였다. 아직은 갈려져 날이 무딘 빗방울들이 하나, 둘 어둠을 가르고 있었지만, 까아만 세상은 끝간대 없이 짙어지기만 하였다. 아픔의 말을 안고서, 말없는 슬픔을 담고서, 한발 한발 다가오는 를 느끼며, 주먹을 꼭 쥐었지만, 사실 그를 만났을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난 알지 못하였다. 태어나 처음으로 온몸을 혀 맞이하여야 하는 였기에 꿀벌마냥 서성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시골 서재에서의 고요한 폭풍전야, 홀로 남겨진 나, 그리고 쏟아져 내릴 그의 날선 문장들을 기다리는 일이 내게 던져진 시간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란 시선이 닿는대로 움직이는 것 외엔 없었고, 그 시간을 견딜 방법을 몰랐다. 자연을 사랑하고, 곁에 두는 일은, 그로 인한 공포와 상실도 오롯이 견뎌야 함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나 아픈 것이고, 지키고 싶기 때문에 모질게도 견뎌내것이었다. 자연의 또다른 단면태풍을 원망하지 않기 위하여, 계속 지켜나가기 위하여, 나 스스로가 단단해져야만 하였다. 어린 나무들 옆에 은색빛 지지대를 세우고, 갈색 끈으로 묶어주었다. 나의 마음도 단단하게 동여매어 그의 슬픔에 함께 떠내려 가지 않기를 소원해 보았다. 떠내려 가버리면 나도, 인연도, 기억도 모두 사라질 뿐이니 말이다.

이제 집으로 들어가자. 몬스테라야. 날이 차가우니.


9. 4. 일요일. 저녁 여섯시.

그의 발걸음은 가벼웠고, 흔들림없이 제주도를 향하고 있었다. 하늘의 구름들만이 바삐 움직이는 고요함 속에서 물기 가득한 침묵으로 다가오는 그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  해낼 수 있을까? 나이 많은 감나무의 살결에 손을 대어보았고, 오랜 세월 모진 고통과 슬픔을 겪어내었을 그의 지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소리없는 소리는 묵직하였고, 깊었다. 깊음 속에 내재한 단단함을 나에게도 나누어 달라며, 말을 건네어 보았고, 노년에 접어든 그는 대답 대신 잘 익은 주홍빛 두어 개를 내 손에 쥐어주었다. 몽글한 감이 길게 드리워진 그의 그림자를 잠시나마 옅어지게 해주었지만, 시간당 20mm 이상으로 쏟아져 내릴 그의 눈물들과 초속 30m/s로 날아들 그의 날선 말들을 묵묵히 견뎌내며, 웃어줄 수 있을 지는 여전히 흐릿하기만 하였다. 두려웠다. 

웃으며, 맞이하싶은데, 나의 붉은 입술이 새파랗게 변해버려 그가 알아볼까 걱정되었다. 그가 쏟아  슬픔을 견뎌내려면 단단해져야만 하였다. 그의 슬픔 속에 나까지 빠져 허우적 거린다면, 그를 슬픔 속에서 영원히 건져올릴 없을 것이었다. 흙과 돌들을 빠알간 수레에 실어 서재 아래에도, 나무들에게도, 아치에도, 꽃들과 작물들에게도 덮어주었다. 흔들리는 팔과 다리의 경련 속에서 시간은 아득하게만 흐르는 듯 하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점점 커져만 가는 그의 발자국 소리와는 달리 나의 몸과 마음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작아지는 나를 회피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나의 시선을 베로니카 퍼스트 글로리에 의식적으로 두었다. 나의 영광들. 마알갛게 웃고 있는 아이들과 눈을 맞추니, 나 또한 덩달아 미소지어졌다. 슬픔 속에서도 기쁨을 건져올려야 삶은 버텨낼 수 있는 것이었다. 이 녀석들도 태풍을 처음 맞기에 두려울텐데, 예쁘게 웃어주어 고마운 마음이었고, 그들 옆에 묵직한  나무 토막들로 감싸주었다. 그들의 파란색이 파도를 가라앉힐 것이다.

부디 너희들의 푸른 빛이 사라지지 않기를. 간청하였다.


9. 5. 월요일. 저녁 다섯시.

그의 그림자가 제주도를 덮고 있었고, 그림자의 끝은 이곳을 향해 있었다. 다가오는 그의 모습에 두렵기도 하였지만, 약속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마음의 일렁임은 잦아들고 있었다. 일터를 일찍 나와 시골로 향하였다. 흩날리는 빗방울을 뒤로하며, 낮과 밤의 구분이 모호한 시간을 달렸다. 나무들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파르르 떨고있는 나무들의 호흡이 셀 수 없이 가빠지고 있었고, 나는 달려야 하였다. 조금씩 내린 며칠 간의 비로 이미 지쳐버린 슬픔과 피로가 그들에게서 만져졌다. 조금만 더 버티자며, 빨간 수레는 같은 길을 반복하며 달렸다. 빗방울은 날을 세워 땅에 꽂혔고, 흙은 아픈 듯 신음소리를 내었다.

투둑, 투두둑... 덮고 있던 흙들, 습들 한겹, 또한겹 벗겨내고 있었고, 난, 배수로를 더 깊이, 더 많이 파내어야만 하였다. 다가오는 그는 슬퍼보였고, 그걸로는 부족하니 더 내어 놓으라며, 그의 손끝은 우의를 입은 옷을 넘어, 나의 속살까지 적시고 있었다. 차가웠다. 그의 눈물은 따듯하지 않았고, 정제되지 않은 슬픔에 짠맛이 났다. 그가 울었는지, 내가 울음을 삼켰는지, 알 수 없었다. 단지, 떨어지는 거대한 슬픔들이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는 영화같은 현실이 나의 눈 앞에서 상영되고 있음을 무기력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스포트라이트는 아픔에 있었고, 눈부시도록 밝았기에 도망치고 싶었다. 아니, 도망치면 그를 영원히 볼 수도, 지킬 수도 없었기에, 그를 만나야만 하였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와의 인연을 끊어낼 수 있는 칼 같은 건, 나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장수풍뎅이야. 어서 너의 집으로 돌아가렴.

많이 아플지도 모르니.


9. 6. 화요일. 새벽 세시.

한반도의 남쪽에 도착하였다는 그의 연락보다, 나의 몸은 앞서서 그를 느끼고 있었다. 지루하였던 바다를 지나, 대지를 물들여 갈 것임을 산에서 쏟아져 내리는 그의 눈물들로 짐작할 수 있었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고무장화 안으로 그의 울음들이 차올랐고, 우의 안으로 그의 슬픔들이 비집고 들어왔다. 추웠다. 어느새 그의 슬픔과 대지의 아픔이 뒤섞여 세상은 혼탁하였고, 가빨라지는 호흡 속에는 물기 가득한 한숨들이 쉴새 없이 드나들었다. 허공의 빗줄기들은 얼어붙은 듯, 멈춰 있었고, 건너편 호수를 향해 나의 선은 굳어 있었다.

몇시나 되었을까. 벽 다섯시. 그의 실루엣이 보였다. 무거운 삶의 짐을 업고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아픔과 슬픔, 그리고 미안함이 뒤섞인 표정에 오히려 마음이 아팠고, 나는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니 당신도 괜찮을거라며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은 언제나 그렇듯 차가웠지만, 그를 보고있는 나는 언제나 그렇듯 따듯해져 갔다. 사랑하는 일은 눈물과도 비슷한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터져나와 소리도 없이 적셔가고, 그만두려 마음 먹어도 흘러내리기만 하는, 분명히 슬픈데도 쏟아내고 나면 희열이 느껴지는, 그래서 내가 어찌 없는 것들이었다. 어찌할 수 없어서 난 지금 이곳에 서있어야 하였고, 비와 바람이 우리를 가려주어 다행이라며, 혼자 중얼거렸다.

비에 젖은 귀뚜라미들  대신 울어주는 까만 밤이었다.


9. 6. 화요일. 새벽 여섯시.

청도와 가까운 울산과 포항을 그가 조금이라도 빨리 지나가길 기도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까맣게 색칠한 밤에 땅으로 내리꽂히는 날선 빛들은 땅을 바다로 스케치하고 있었고, 하늘은 검은색으로 덧칠하고 있었다. 산은 울었다. 묵직한 기계음의 옷을 벗겨놓은 듯한 소리가 빨간 눈의 밤을 아파하였고, 거대한 고통으로 바뀌고 있었기에, 손수건 따위를 내밀 수도 없었다. 그저 함께 비를 맞으며, 서로에게 위로를 전하, 위안이 되어야 하였다. 흙인지, 물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것들이 서재터로 들어가는 코스모스 길 위로 토해져 내렸고, 나의 종아리는 의지가지 없이 휑뎅그렁하게 놓여있었다. 등대 없는 황량한 바다를 떠도는 배가 되어 하늘의 달과 별을 찾았으나, 그들도 오늘만은 침묵하였다. 날카로운 바람이 리나무 울타리를 쓰러트렸고, 어지러웠는지, 물살때문인지, 나도 휘청거렸다.

'엄마. 나 좀 도와줘.'

목구멍까지 차올라 하늘을 향해 뱉어낼 수 있는 유일한 말인듯 하였다. 코스모스들이 쓰러지고, 옥수수들이 넘어지고, 고추와 방울토마토들이 땅으로 누워, 흘러 내리는 물살에 몸을 맡겼다. 두 팔로는 모두 안아낼 수 없었고, 이제는 시야도 아득해졌다. 그가 쏟아내는 문장들을 하나씩 집어 삼키며, 가만히 듣고 있는 일과 그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는 일, 그리고 그가 가진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의 구멍을 만져 보는 일. 지금 가치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떠나가는 그를 마음에 기고, 나 또한 대지에 마음을 써두고서 그 자리를 잠시 떠나야 하였다. 물살은 순식간에 문장을 지웠다. '부탁이야. 잘 버텨내줘.' 


9. 6. 화요일. 오전 열한시.

그가 동해를 지나 소멸하고 있었다.

그의 서사가 잠시 나의 곁을 떠나갔다. 사라지는 것들은 어떤 모습이든 서러운 흔적들을 남겼다. 그가 남긴 날 것의 상처들을 치유하기 위해 다시 서재로 향하였다. 그의 슬픔을 다 지워내지 못한 상실들곳곳에 널려 있었지만, 나는 괜찮았다.

그를 잘 보내주었기에 원망이, 서글픔이, 설 자리는 이곳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곳은 다시 꽃이 것이고, 글이 될 것이기에, 또다시 슬픔이 찾아와도 견딜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만발디딜 없이 가득하였다. 빛이 바래지면서, 가을을 나의 코앞에 가져다 주던 옥수수들은 모두 잃어야만 하였다. 비록 지난주에 수확을 모두 마쳤기에 과실을 잃은 것은 아니었지만, 2미터의 큰 키로 나를 내려다보던 든든한 이 녀석들이 몹시도 그리울 것이다. 종잇장처럼 구겨져버린, 해바라기 입간판과 80도의 각도로 기울어버린 오이와 다래들을 키워내던 아치들도 손을 보아야 하였다. 누워버린 코스모스와 백일홍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일으켜 세웠다. 쓸려 내려간 흙들을 보충해 주고. 돌을 좀 더 쌓고. 조금씩 일으켜 세우며, 얼마 간은 그가 다녀간 비어버린 공간들을 채워가야 할 것이다.

건너편 할아버지가 괜찮냐며, 손을 흔들었다. 서로의 삶이 온전한지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그런 날이었다. 아픔이 걸어가고 난 상흔 속에서도 블루세이지는 평안한 푸른 빛의 꽃을 보여주었다. 인생이란 아픔 속에서도 작은 꽃들피어내고, 피어난 소중한 것들을 발견하며, 그것들로 별탈있는 하루들을 견뎌내는 시간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인 하였다. 여린 블루세이지가 결국 태풍을 막아 주었고, 나를 건져올렸다. 자신을, 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사랑한다면, 태풍이 남긴 슬픔 속에서 그것들을 건져올려 주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당신들이 발견한 오늘의 블루세이지는 무엇인가.


이별을 말하기 위해 다가오던 그날의 당신은, 태풍이었고, 그날의 난, 온전히 당신을 버텨내었다. 당신의 태풍이 나를 밟고서 몇번을 지나가더라도, 나는 견뎌내며, 당신의 슬픔 속에서 함께 빠져 죽지 않을 것이, 당신을 언제나 건져올릴 것이다.


하지만, 끝내 슬펐다. 내가 슬펐던 건,

당신이 없는 하늘이 이렇게나 맑았기 때문이었다.

태풍 힌남누가 지나가고 난, 맑고도 슬픈 하늘.

덧. 그나저나 이 글을 엄마가 읽게 되다면...

      등짝 스매싱이 날아들 것이다.

      엄마의 등짝 스매싱은 태풍보다 아프다.

      옆으로 누워있는 엄마는...두려움다.

      그래도 이것 또한 견뎌야 한다.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이들과 행복한 추석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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