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욱 산문집.
눈이 뜨인다. 아직 어둠의 피륙은 걷히지 않았다. 적막 속에서 꿈은 이르게 깨어졌다. 조각난 꿈만큼이나 두통이 밀려온다. 희미하게 벌어진 눈꺼풀 사이로 콜타르빛 벽지가 어렴풋이 다가온다. 깨어진 꿈을 붙잡으려 되뇌인다.
'무슨 일 있나요. 어디 아픈가요. 밥은 잘 챙겨먹나요.'
그녀가 꿈에서 나를 말없이 바라본다. 걱정과 불안이 뒤섞인 기습적인 통증이 흉곽 너머에 머무른다. 이어서 오한이 나의 실핏줄까지 휘어감는다. 이불을 머리 끝까지 잡아당겨 보지만, 오한은 쉽사리 물러나지 않는다. 오한은 내가 어떻게 손 써볼 수 있는 추위와는 다른 거니까.
날카로운 추위는 흐물해진 근육과 텅 빈 뼈 속을 집요햐게 파고든다. 옷깃을 여미거나, 목도리를 두루거나, 이불을 두 겹씩 덮어 추위를 어떻게든 막아낸다. 추위는 외적 충격일 뿐이다.
그녀가 던진 수천 조각의 이별처럼.
하지만 오한은 속수무책이다. 내 안의 따듯한 것들이 빠져나가는 소리이고, 허겁지겁 이를 막기 위해 나의 몸이 온 힘을 다해 저항하는 비명이다. 이가 부딪히고, 살이 떨리고, 열이 일어서고, 수많은 관절의 통증이 몰려온다. 부지불식간에 나의 내부에서 나를 잠식해 간다.
내 안에서 살아가는 타자는 이따금 오한을 데려온다. 나에게 들어와 하나가 된 타자는, 떠나간 후에도 나의 늑골 너머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가끔씩 그리움, 또는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심장을 두드린다. 더이상 외부의 타자가 아닌 나의 몸과 마음과 영혼의 일부가 된 현재의 타인이자, 나 자신이다. 그런 타인이기도 하고 동시에 자신이기도 한 나는, 나를 향해 속삭인다.
'난, 이렇게 살아가요. 가끔은 당신이 그리울 때가 있어요. 그러니 당신도 나를 잊지 말아요. '
나는 습격받는다. 무방비 상태인 내가 습격에 관하여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저 해열제 한 알을 삼키고, 이불 안으로 기어들어가 몸을 웅크릴 뿐이다. 그리고 거칠게 밀려오는 통증을 바위처럼 견딘다.
사랑을 노래하려고 하면 고통이 되었고, 고통을 노래하려고 하면, 사랑이 되었다는 '슈베르트'의 말을 생각한다. 고통에서 시작되었으나 어느새 사랑에 닿아있던 나의 글을 다시 읽으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슈베르트'가 보리수 아래로 걸어 갔듯, 나는 감나무 아래 평상에 걸터앉는다. 가끔 찾아오는 오한은 부재의 고통으로 시작해, 결국 내 안의 타자를 향한 그리움에 가닿는다. 며칠을 온전히 앓고나야, 비로소 개구쟁이 연인처럼 오한은 물러난다.
하지만 '프루스트'의 말처럼, 떠나간 후에 그녀의 얼굴은 오히려 또렷해진다.
지나가버려도 사라지지 않는게, 누구에게나 있다.
덧. 깊어가는 겨울입니다. 시절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저 멀리서 봄이 다가옴을 확신합니다. 건강 잘 챙기십시오.
작가님들, 그리고 독자님들 항상 강건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