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이설 Jun 24. 2023

딱 죽고 싶은 하루

무기력이 살린 나의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깊은 우울함이 온몸을 잠식했다.

몸은 빗물에 젖은 듯이 축축 늘어지고, 기분은 냄새나는 시궁창에 빠진 것처럼 불쾌하고, 짜증이 났다.

눈을 뜨자마자 기분을 망쳐버린 나는 침대 위에 누워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그냥 딱 죽어버리고 싶어.'  


요즘 자주 죽음의 그림자와 싸우곤 한다.

우울감과 불안증세가 심해졌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상담을 할 때도 늘 죽음에 대해 말한다.


주치의 선생님은 내게 물었다.


"왜 살아 있다고 생각하세요?"


나는 답했다.


"죽지 못해서요."


누워서 찬찬히 생각을 해보았다.

살아야 할 이유보다 죽어야 할 이유가 백만 가지는 더 되는 것 같았다.

이렇게 죽을 이유가 넘쳐나는데 왜 살아야 하는 걸까.


그렇게 오늘도 머릿속에는 ‘죽음’이라는 두 글자로 빼곡하게 가득 찼다.


어떻게 죽어야 실패하지 않을까.

어떻게 죽어야 조금이나마 덜 고통스러울까.

어떻게 죽어야 아픔을 견디다 못해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

죽음이 가진 경우의 수를 생각할 때마다 영혼이 조금씩 깎여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는 머릿속으로 몇 가지의 방법을 시도했다.

‘시도’라고 하는 단어가 굉장히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 하지만 사실이다.

나는 꽤 자주 죽는 방법을 시뮬레이션하고는 했다.

때론 끔찍했고, 때론 서글펐던 그 상상을 되뇌고 또 되뇌었다.


그런데 하필 오늘, 나는 무기력하다.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며 ‘죽음’을 생각하는 것 말고는 행동으로 옮길 에너지가 없었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답답함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마음은 우울함과 답답함으로 가득 찼는데, 몸은 무기력해서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미칠 지경이었다.


누군가는 이 반복되는 슬픔의 굴레를 한심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은 오래된 우울증과 널뛰는 불안증세가 겹쳤을 때, 그리고 유독 그 증세가 심한 오늘 같은 날에 이 지독한 호르몬이 나를 더 못살게 구는 결과물이었다. 이런 날이면 약을 먹고, 침대에 누워 그냥 무기력하게 잠을 자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머릿속에는 온통 '죽을 궁리'만 하면서 말이다.


가끔은 생각했다.

이 지독한 무기력이 죽음으로부터 나를 살렸던 건지도 모르겠다고.

미치도록 무기력했기 때문에 죽음조차 실행으로 옮기지 못했던 많은 날들이 쌓여 오늘이 된 것은 아닐까.  

어쩌면 오늘도 이 무기력으로 위기의 하루를 버틴 것일지도 모른다.

무기력이 살린 나의 오늘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살아버린 오늘이 기쁘지 않다.  


죽음을 실행으로 옳기지 못한 것에 자책하며 또다시 살아있음에 나를 원망한다.  

무기력에 모든 회로가 멈춰버린 내 몸을 탓하며 스스로 몸에 상처를 내고 다음을 기약하는 나는 여전히 아픈 존재다.

  

'딱 오늘 이었는데.'

라고 마음먹었던 오늘이 지나간다.

무기력이 살린 나의 오늘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