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이설 Jun 29. 2023

조증에 관한 흔한 오해

슬프게도 조증은 멀리서 보면 보이지 않는 병이다.

“엄마, 오늘 밖에 외출할까?”     


“이거 해보고 싶은데 어때?”

 

“나 너무 잘할 것 같지 않아?”     


“엄마, 엄마!!”                                        



당시 나는 조증 상태였다.     

이런 말, 저런 말을 시끄럽게 떠들며 엄마 앞을 성가시게 왔다 갔다 했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엄마는 말했다.                         


“너, 이제 좀 괜찮아지고 있는 거 아니야? 이것저것 해보려 하고.”                         


그 순간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결국 그 마음을 참지 못했고, 버럭버럭 화내며 눈물을 쏟았다.                         


“아니거든? 나 아직 아프거든?”

     

“내가 다 나은 줄 알아?!!!!”                       

     

엄마는 몹시 당황해하셨다.

그런 뜻이 아니라고, 그냥 좋아졌으면 싶어서 하는 얘기였다며 나를 달래고 또 달랬다. 엄마의 의도와는 다르게 툭 던져진 그 한마디가 가슴에 꽂혔다. 그리고 한동안 마음이 아렸다.


하물며 가족들조차 오해하는 조증의 상태는 늘 나를 미치게 했다. 주변인들에게는 다 나은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무기력해 보이지 않고, 기분이 밝아 보이며, 갑자기 말도 많아지고, 무언가 해보려는 의지를 보이는 호기로운 모습이 우울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을 테니까.

                         

하지만 슬프게도 조증은 멀리서 보면 보이지 않는 병이다. 조증도 우울증 만큼 아프다. 아니 어쩌면 더 고통스럽고, 괴롭다. 기분이 들뜨지만 신경은 날카로워지고, 에너지가 넘치지만 불안과 초조함은 더 커진다. 지금은 웃고 있지만, 그 뒤엔 몇 배로 큰 우울감이 다시 찾아와 기분이 곤두박질 칠 것을 알기에 오르락내리락 널뛰는 기분이 그저 불쾌하고, 공포스럽다.


조증이 왔을 때 지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프다더니 좀 괜찮아졌나 보네?”      


“거봐, 의지를 가지면 나을 수 있다니까!”

                        

무심코 내뱉는 그들의 한마디는 마치 가시가 목에 걸린 듯 따갑고, 불편했다.   


주치의 선생님과 상담하며 말했다.                    


“조증인 상태의 저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제가 다 나은 줄 알아요. 지금도 아픈 상태라는 걸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아서 너무 화가 나요. 저는 너무 힘들고, 아프단 말이에요.”

     

“그냥 그렇게 생각하도록 내버려 두세요. 굳이 설명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요.”

                      

굳이 설명하려 애쓰지 말고 내버려 두라는 주치의 선생님의 말이 솔직히 허무하게 들렸지만 달리 방법은 없었다. 주변 사람들을 한데 모아놓고, “자, 양극성장애는 말이야... 그중에서도 조증은 말이지...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건...” 라며 떠들어 댈 수도 없지 않은가. 나조차도 어쩌다 이 병에 걸려서 지금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데 설명은 무슨.                             


그저 조증 상태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어이없게도 우울증이 기다려질 정도였다. 우울증은 최소한 기분이 우울하다는 것을 인지할 시간이라도 줬으니 얼마나 친절한 병인지. 어쩌면 365일 항상 우울한 상태를 오히려 안정된 상태라고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늘 우울한 상태에 있다면, 적어도 주변에서 쉽게 말하는 “너 이제 아무렇지도 않구나?”라는 말은 듣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조증에 관한 흔한 오해들이 우리에게 비수가 되어 날아와 꽂힐 때가 있다. '모르니까'라고 생각하기엔 왠지 억울하고, '뻔히 내가 힘든 거 알면서'라고 생각하면 괜히 마음이 더 쓰라리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설명하기 어려운 이 병을 앞으로 어떻게 견뎌내야 할 것인지는 물론 오로지 나의 몫이다. 나의 병이 외로움에 일조하고 있는 뭣 같은 상황. 하지만 뭐 별 수 없나. 파도처럼 변화하는 감정기복을 오롯이 혼자 견디며, 약이라는 방패를 들고, ‘나’라는 성을 지키는 외로운 싸움을 해야 할 수밖에.                                         

이전 03화 딱 죽고 싶은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