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머신 위에서 30분
사실 요즘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죽고 싶다는 충동이 하루종일 머릿속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죽을까, 언제 죽을까.
매일 이 생각만 하며 살고 있다.
요즘 상담할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 그냥 죽고 싶어요. 죽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아서 너무 힘들어요. “
고통스러웠던 나는 참을 수가 없었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근데 진짜 죽고 싶으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 그냥 죽어야 하는 거 아닌가. 죽고 싶은데 죽지 않으려고 뭐라도 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이 모순적인 상황은 대체 뭔지.
모순이든 뭐든 아무튼 지금 당장의 고통을 잠시라도 없애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했다.
그리고 생각해 낸 것이 ‘헬스’였다.
3개월을 등록하면 1개월이 무료.
호기롭게 3개월을 끊었다.
생존을 위해 시작한 헬스.
죽을 것 같아서 죽지 않으려고 시작한 헬스.
이 어마어마한 목적의 헬스를 시작했다.
처음 헬스장을 갔을 때는 어딘가 불편했다.
쭈뼛쭈뼛하며 간신히 러닝머신 근처로 가 슬쩍 올라탔다. 스피드만 소심하게 눌러대며 빨리 걷고, 뛰다가 천천히 걷고를 반복했다. 그리고 조용히 내려와 신발만 갈아 신고 집으로 도망치듯 돌아왔다.
헬스장에서의 첫날, 러닝머신 위에서의 30분은 그렇게 끝이 났다. 헬스장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기분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단 30분이었지만 안 좋은 생각을 잊기엔 충분한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날
또 헬스장을 찾았다.
전날보다 조금은 더 친숙해진 헬스장. 자연스럽게 러닝머신 위에 올라갔고, 이번엔 TV도 틀었다.
러닝머신 위에서 30분.
걷고, 뛰는 30분 동안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숨이 차는지, 다리가 아픈지 같은 것에만 몰두했다.
그 30분 동안 나는 잠시 ‘죽음’으로부터 벗어났다.
러닝머신 30분을 마친 뒤 사이클로 향했다.
사이클 30분을 타면서 칼로리를 태우듯 머릿속을 채운 ‘죽음’에 대한 생각도 태워버렸다.
그리고 그날, 헬스장에서 샤워를 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어둑어둑한 저녁. 바람도 선선한 데다 샤워하고 개운했던 탓에 컨디션이 너무 좋았다. 게다가 머릿속이 깨끗하게 비워진 듯해 기분마저 상쾌했다.
그 후, 한 달째 헬스장에 가고 있다.
기분이 축축 처지고, 죽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헬스장에 간다.
여전히 이 모순적인 행동이 뭐가 뭔지 모르겠다. 죽고 싶은 것도 진심인데, 죽고 싶은 마음이 힘든 것도 진심이라. 혹시나 내가 진짜 죽을까 봐 죽지 않으려고 헬스장을 간다. (죽고 싶다면서?)
뭐가 됐든,
헬스장 가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오랜 기간 집에서만 생활해서 안 좋아진 건강도 챙기고, 우울증에 걷기나 달리기가 그렇게 좋다는데 그곳엔 러닝머신이 있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 죽을 생각 하는 것보다야 표면적으로도 훨씬 낫지 않은가.
물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무기력과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변화에 헬스장이고 뭐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서 잠만 자기도 한다. 하지만 죽음의 공포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공간이 어딘가에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불안정한 마음에 큰 도움이 됐다.
또 가끔 헬스장 트레이너님이 정찰을 돌다가 내가 눈에 띄어 반강제로 근력운동을 하는 날이 있다. 그날은 뻐근한 근육통에 무념무상으로 잠도 꽤 잘 잘 수 있다. 불면증에 아주 딱이다.
또 하루종일 내리는 비에 기분이 축축 처지고, 우울한 데다 자꾸 안 좋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오늘도 나는 헬스장에 가려고 한다.
또 한 번의 30분 러닝과 사이클, 어설픈 근력운동이 오늘의 우울과 불안, 나쁜 생각을 없애주기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