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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설 Jul 07. 2023

그래도 글쓰기를 하는 이유

우울하고 무기력한 와중에도 글은 썼다.

1년 전,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치료 목적에서였다.


타 플랫폼 에세이캠프에 참여했다. 매일 한 단어의 주제어를 받았다. 그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1000자 안에 써야 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다른 단어가 문자로 도착했다. 재밌었다. 한동안은 그 문자가 외로움도 달래주는 것 같아 좋았다.


매일 글 쓰는 것에 열을 올렸다. 처음 글을 쓸 때는 과거를 탈탈 털었다. 가족, 연애사, 학창 시절, 상담이야기까지. 꺼낼 수 있는 건 다 꺼내려고 노력했다. 어차피 누구 보여줄 것이 아니라, 거리낄 것도 없었다.


말 그대로 그냥 한번 써보는 거였는데 자꾸 쓰니 습관이 되었다. 습관이 되니 잘하고 싶어 졌고, 욕심이 생겼다. 그러다 브런치를 알게 되었다. 꽤 멋져 보였던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드라마 프로듀서 지인에게 글을 보여주며 어떠냐고 물었다.


“글을 너무 잘 쓰려고, 어렵게 쓰는 것 같아. 그냥 편하게 써.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쓰려고 노력해 봐.”


어려웠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글은 어떻게 써야 하는 걸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리고 노력했다. 어렵지 않게,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않고, 편안한 글을 쓰기 위해. 그런데 오늘 또 비슷한 얘기를 듣고 말았다. 주치의 선생님에게.


“글을 너무 예쁘게만 쓰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감정을 더 솔직하게 표현해 보세요. 생각나는 대로 써보는 거예요.”


선생님의 말을 듣는 내내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저 말은 그때 그 ‘초등학생도 이해하는 글’을 쓰라던 말과 같은 맥락의 말인 걸까. 나는 또 어렵게 포장된, 재미없는 글을 써버린 걸까. 심지어 솔직하지도 않다니. 대체 그동안 무엇을 써온 걸까.


힘이 쭉 빠졌다.


그리고 슬슬 짜증이 났다.


 ‘내가 뭐 얼마나 대단한 글을 쓴다고 이런 말을 계속 듣는 걸까. 하 그냥 다 하기 싫다.'


괜히 울컥하고, 기분이 가라앉았다.


사실 나 자신에게 답답하고 화가 났던 것 같다. 브런치에 올라오는 수많은 작가들의 재밌는 글을 보면서 나는 왜 이렇게 쓰지 못할까 하는 마음에 주눅 들어있던 찰나였다. 하필 그 타이밍에 들어버린 팩트폭격 조언에 괜히 어깃장이 난 것이다. 부족함을 제일 잘 아는 것은 나다. 그래서 부족함을 들켜버린 것에 움찔해 더 울컥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일기장에 혼자 쓰고, 혼자 읽을 글이 아니라면 그 모든 말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다시 글을 쓰고 있다. 오늘은 다른 글을 많이 읽어보려 한다. 내 글과 비교해 보고, 어떻게 하면 글의 단점을 보완해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을까 깊이 고민해 볼 참이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쓸데없는 욕심이 글 쓰는 것을 방해하는 것 같아 마음을 내려놓으려 한다. 그래도 아직은 글 쓰는 것이 좋으니 별수 있나. 그냥 뭐라도 해보는 수밖에.


글쓰기는 힘들 때마다 늘 함께했다. 자해하고 싶은 충동이 들 때면 커터칼 대신 펜을 들어 일기를 썼다. 또 우울하고 무기력한 와중에도 글은 썼다. 그러니 여전히 뭐라도 써야 할 것 같다. 그냥 어떤 이유보다도 내가 하고 싶으니까. 그냥 뭐, 딴 건 모르겠고 나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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