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과 상담일지 - 병원 가는 날
일주일에 네 번 병원에 간다. 약을 하루, 길면 이틀 치만 받아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말을 제외한 매일 약을 타러 병원에 가야 한다. 사실 약도 약이지만, 집밖으로 외출을 전혀 안 하고 지내온 날만 3년이 넘었기 때문에 일부러 나가려는 이유도 있다. 병원 가는 것이 유일한 외출이기 때문이다.
'몇 분이나 대기를 할까.'
'어젯밤, 힘들었던 마음을 어떻게 말하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버스는 병원 앞에 도착해 있다.
'한 명... 두 명.... 세...... 명'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대기실에 몇 명이 앉아있는지부터 확인한다. 그리고 차례를 기다린다. 대기실에 앉아있는 동안 주로 핸드폰 메모장에 글을 쓴다. 아니면 써놨던 글을 고칠 때도 있다. 이상하게 병원 대기실에 앉아있으면 뭐라도 써지고, 읽게 된다. 병원 특성상 차분한 분위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다 이름이 불리면 주치의 선생님의 진료실로 들어간다.
선생님은 언제나처럼
“좀 어떠셨나요?”
라고 물었다. 하지만 나는 한참 동안이나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답하기 귀찮고, 힘들 만큼 무기력했다.
그런 작은 행동만 봐도 주치의 선생님은 안다.
“힘드셨군요?”
그때서야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을 뱉는다.
“우울함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분이 들어요. 그냥 다 모르겠고, 죽고 싶어요. 선생님."
주치의 선생님은 내가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잠시 허공을 바라본다. 아무래도 이 타이밍에는 무슨 말을 해줘야 적절할지 고심하는 것이 아닐까. 이때는 끝까지 선생님의 대답을 기다린다. 그런 날은 무슨 말이라도 들어야 마음이 안정되기 때문이다. 그 기다림의 정적은 마치 1분이 10분 같다.
사실 죽고 싶다는 말을 한정 없이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은 주치의 선생님뿐이다.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는 말은 할 수가 없다. 돌아오는 대답은 뻔할 테고, 그 뻔한 대답에 또 상처를 받을 테니까.
선생님은 운동을 하라고 했다. 운동을 하면 나쁜 생각들이 다 잊힐 거라고 했다.
주치의 선생님의 말을 잘 듣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무기력이 심할 때는 별 수 없다. 뭐든 해보려고 하는데 몸과 마음이 따로 논다. 어떨 땐 우울감에 짜증까지 더해질 때가 있다. 그때는 괜히 삐뚤어지고 싶은 마음에 청개구리처럼 하라고 하면 더 하기 싫다. 특히 운동하라는 말은 ‘병원에서 제일 듣기 싫은 말 베스트 5’ 안에 드는 말일 거다. 무기력으로 몸은 늘어지고, 우울감에 힘들어 죽겠는데 운동이라니. 이럴 땐 괜히 더 어깃장이 난다.
진료와 약처방, 모든 것이 끝난 후 병원을 나오면 그 순간부터는 오늘의 상담이 하루를 결정짓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한동안 이 상담의 잔상을 떨쳐버리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써야 한다.
진료를 마치고 나면 그날 상담의 잔상이 진하게 남는다. 짧으면 하루, 길면 이틀.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길 내내 '어떤 대화를 했는지', '주치의 선생님은 나에게 뭐라고 했었는지' 같은 것들이 나의 의지와는 별개로 계속, 또 계속 생각이 난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그날 하루를 뒤흔든다. 상담내용에 따라 하루가 덜 힘기도, 아니면 더 힘들어지기도 한다.
어쩌면 병원 가서 상담하는 것 이외에는 늘 혼자 있는 탓에 그럴지도 모른다. 가족, 친구와의 연락을 멀리한 채 늘 집에만 있다. 그러니 하루 중 가장 큰 사건인 병원 간 날에 일어난 일, 상담내용 같은 것들이 잔상으로 더 또렷하게 남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상담의 잔상이 자꾸만 계속해서 떠오르는 것은 힘들다. 그리고 여전히 상담의 잔상을 지워줄 명쾌한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어느 날은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열심히 병원을 다니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모르겠다. 내일은 그냥 병원도 가지 말아 버리자.’ 하지만 전날의 무모한 패기는 약이 없는 불안감 앞에 힘없이 무너지고 만다. 마지막 잎새 같은 마지막 약봉지가 결국엔 다음날 또 병원을 가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그리고 그런 날을 반복하며 매일 병원으로 유일한 외출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