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일이 자꾸 생각나 괴로울 때
나는 상처가 많다.
가족에게, 친구에게, 옛 연인에게.
그들에게 받은 상처는 고스란히 내 몸 어딘가에 남아있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형태로 나를 괴롭힌다.
우울증으로, 무기력으로, 불안장애로, 스스로를 향한 공격인 자해로.
상처는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시작한다.
어린 시절 내 곁을 떠나 있던 엄마로부터,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친구로부터, 아무 거리낌 없이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내던 옛 연인으로부터.
사실 상처를 받았던 ‘때 와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상처는 시공간을 초월해 과거의 나를 지금 이 순간으로 끌어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거에 받은 상처는 현재의 상처인 것처럼 여전히 아프고, 쓰라리다.
요즘 과거의 기억 때문에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20년 전의 나, 10년 전의 나, 5년 전의 내가 자꾸 나타나 아프다고 말한다. 그 순간순간의 일들이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왜 아무런 저항 없이 그 상처를 고스란히 받고 있었던 것인가.'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들로 그 기억들을 곱씹는다. 그리고 계속 곱씹다 보면 과거의 나처럼 현재의 나 또한 무너진다.
우울하고, 답답했다가. 억울하고, 화가 났다가. 슬프고, 아프기를 반복하며 혼자 과거의 기억 속에서 허우적대며 한참을 빠져있기도 한다. 이럴 때는 약조차도 소용이 없는 것 같다.
과거의 고통에서 도망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그리고 나를 아프게 한 사람들에게서 해방되는 날이 오긴 오는 걸까.
시간이 가면 해결이 된다는 말은 개나 줘버리고 싶다.
여전히 몇십 년 전의 일로도 이토록 고통스럽고 아프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상담을 하며 주치의 선생님에게 나를 괴롭히는 과거의 일들에 대해 일부를 털어놓았다.
선생님은 상담을 마치고 일어서는 나에게 운동을 꼭 해보라며 권했다.
‘그래...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달리면 그 생각이 조금은 사라지는 것 같았지.’
무작정 약을 몇 알 더 먹는 것도 이제는 소용이 없는 것 같으니 한번 더 속는 셈 치고 달려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날, 헬스장에 가서 러닝머신을 평소보다 30분 더 달렸다. 죽음의 생각으로부터 잠시 도망가게 해 주던 러닝머신이 혹시나 과거의 고통으로부터도 도망갈 수 있게 도와주지 않을까 싶어 더 열심히 달렸다.
하지만 당장 그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열심히 달리고 집으로 돌아온 날 밤, 여전히 과거의 상처들이 다시 생각났고, 그 과거의 고통은 나를 잠 못 들게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달아나보려 한다. 과거의 고통으로부터 한 번에 도망칠 수는 없지만 한 걸음씩 멀어질 수는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말이다. 달리다가 잡히고, 또 달리다가 잡히는 날이 허다하겠지만 가만히 한 자리에 서서 과거의 고통에게 잡아먹히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너무 힘들 때는 운동이고 뭐고. 그냥 과거에 잡아먹히든 말든 나 자신을 방치해 버리는 날들이 더 많다. 그 고통 속에서 스스로를 학대하며 과거보다 더한 상처를 주기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애쓰고 있다.
아니 애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날 아프게 하는 과거의 고통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그리고 그 상처를 준 이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