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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설 Jul 11. 2023

울다가 끝나버린 하루

자꾸만 작고, 사소한 무엇에 흔들린다.

며칠 전, 날씨는 우중충하고, 곧 비가 쏟아질 것 같던 그날, 병원 상담을 마치고 집에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을 때였다. 상담 중 느꼈던 기분을 잊지 않고 기록하기 위해 핸드폰 메모장에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고개를 들어 옆을 봤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떤 아저씨가 서 있었다. 왠지 어딘가 익숙했던 얼굴, 키, 분위기.


‘뭐지? 어디서 봤더라?’


계속 힐끔힐끔 쳐다보며 고민했다.

그리고 생각이 났다.

고등학교 선생님이셨다.

담임 선생님은 아니셨지만,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있던 미술 선생님이다.


그 순간 기분이 이상해졌다.

갑자기 목구멍이 따갑기 시작하더니, 기분이 축 가라앉았다. 그리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왜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 건지 처음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냥 계속 눈물이 났다.


버스정류장 뒤편으로 가 흠뻑 젖은 얼굴을 가리고 있던 마스크를 벗었다. 그리고 바람에 얼굴을 말리며 불안해진 감정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썼다.


간신히 눈물을 멈추고 나서야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마침 다가오는 버스에 도망치듯 올라탔다. 그런데 버스기사님이 나를 보며 “안녕하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터져 버리고 말았다.

집에 가는 내내 감정에 복받쳤던 나는 버스 의자 손잡이에 머리를 처박고 울었다. 집 앞 정거장에 도착할 때까지 말이다.


대체 왜 울었던 걸까. 도대체 왜.


학창 시절의 선생님과 다시 마주친다는 건 오래전 어릴 적 나와 마주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너무나 고달픈 인생을 살고 있는 지금의 내가 우연히 마주친 열여덟 살의 나는 여전히 안쓰럽고, 짠했다. 오래된 아픔은 서른 이 넘은 지금이나, 열여덟이던 그때나 별로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아프고, 고단했고, 힘들었다. 학창 시절의 선생님을 보니 그때의 어린 내 모습이 떠올라 슬퍼졌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뚜벅이다. 버스를 타고 다니다 보면 별별 일을 다 겪곤 하는데, 특히 버스 탈 때 인사를 건네는 버스 기사님을 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내가 탔던 버스 기사님은 버스에 올라타고 내리는 모두에게 인사를 건넸다. 수십 번, 수백 번도 더 했을 인사  “안녕하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는 말이 그날따라 너무 슬프게 들렸다. 흔한 인사 한마디, 따뜻한 말. 그런 것들이 너무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어이없게도 버스 손잡이에 머리를 처박고 펑펑 운 것이다.


그날 저녁, 우울했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기 위해 헬스장으로 향했다. 제법 자연스럽게 러닝머신을 타며 TV를 틀었다. 기안84의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2 인도 편'을 보며 열심히 뛰고 있었다. 그런데 갠지스강이 나오는 순간 또 눈물버튼이 눌러지고야 말았다. 3시간 만에 재가 되어버린 한 사람의 인생이 너무 허무하게 느껴졌다. 죽음과 덧없는 인생을 생각하니 알 수 없는 우울감이 빠르게 몰려왔고, 눈물이 쏟아지는 것이다. 계속 눈물이 나는 바람에 도저히 운동을 더 할 수 없었고, 운동을 관두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종일 눈물이 나던 날.

어딘가가 고장이 난 건가 싶던 날.

그냥 그런 날이 있다.


무엇을 해도 슬프고, 무엇을 보고,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 우울해지고, 무슨 말을 하려고 해도 눈물부터 나는 그런 날. 어쩌면 정말 눈물이 났던 건 매일 죽음을 고뇌하는 나에게 닥친 우연한 상황들이 마음 깊숙한 곳 어딘가를 자꾸 건드려서 인 것 같기도 하다.


‘죽고 싶어 죽겠는데 왜 하필 고등학교 선생님을 마주쳐서 안쓰럽던 어린 날의 나를 기억나게 해?’ ‘죽고 싶어 죽겠는데 버스 기사님은 왜 이렇게 또 친절하고 난리야?' '하필 가볍게 본 TV프로그램에 죽음의 의미가 나올 건 또 뭔데?' 같은 거 말이다.


자꾸만 작고, 사소한 무엇에 흔들린다.


우연히 마주친  고등학교 선생님이 그렇고, 쓸데없이 너무나 친절한 버스 기사님이 그렇고, TV프로그램에서 본 죽음이 그렇고, 브런치의 어떤 글이 그렇고, 드라마 속 한 줄의 대사가 그렇고, 무뚝뚝하고 차갑기만 했던 주치의 선생님의 따뜻한 위로가 그렇고, 헬스장 입장 시 자동음성인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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