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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작 Nov 03. 2015

배터리가 5% 남았습니다

프롤로그


 그런데, 당신도 외롭나요?


'배터리가 5% 남았습니다.' 또 이렇게 소란스러운 하루가 끝났다. 깜깜한 퇴근길. 다리 위엔 겨울을 알리는 찬 바람이 불고 있었다. 나는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싶다고 느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아니, 나는.. 외로웠다.


밤하늘의 달이 오늘따라 유난히 밝다고-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휴대폰을 꺼내 연락처에 들어가 스크롤을 내렸다.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친구에게 전화해 볼까.. 한참을 망설이는 사이 매정하게 휴대폰이 검게 변해버렸다.


차가운 휴대폰을 귀에 대고 말했다.

'오늘 달이 밝다. 참 예뻐.'




하루에도 수많은 정보를 보고 많은 메시지를 나눈다. 하지만 무엇이든 스위치가 꺼져버리면- 나라는 존재는 유령처럼 투명색으로 버렸다. 각종 사이트에서 수많은 정보를 보았음에도 저녁이면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텅-비어 버렸다. 종일 많은 메시지를 주고받았는 대도 선뜻 달빛 하나 같이 보자고 마음을 전 할 친구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디지털 기기들과 충전되고/ 방전되고/ 충전되고/ 방전되는/ 배고픈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도대체 내 인생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인생의 도화지를 펴보았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흰 부분이 너무나 많았다. 디지털 문명에 휩쓸려 정신없이 주워 담은 가십들, 숫자 덩어리들이 구석에 가득 쌓여 있었다.


디지털은 한정된 숫자로 모든 것을 표시하기 때문에 간단하고, 빠르고, 쉽다. 더 빠르고 더 간단하고 더 편안한 삶을 살아가길 원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발전된 디지털 기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내가 이 문명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놀라운 기기들이 가져다준 편리함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모르는 곳에 뚝 떨어져도 휴대폰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안심이 될 정도니까. 

하지만 휴대폰이 없다면 어떨까? 외출하기 전에 휴대폰을 집에 두고 온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는 사람은 공감할 것이다. 늦더라도 약속 장소에 나갈까? 아니면 욕을 들을 지라도 휴대폰을 찾기 위해 집으로  돌아올까? '휴대폰이 내 인생에서 사라질 일이 없으니 그것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살아도 괜찮아요!'라고 야무지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럼 나는 그런 당신에게 묻고 싶다. 휴대폰 속에서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정보들을 보고 있노라면 순간 머리가 텅 빈 듯한 느낌을 받아 본 적 없었느냐고. 취미가 뭐예요? 특기가 뭐예요?라는 물음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열지 못한 적은 없었는지.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예요? 라고 물었을 때 기억이 나지 않아 휴대폰을 꺼내 검색하려는 당신을 본 적은 없었는지.

당신을 정말로 채우고 있는 것은 '무엇'이냐고- 묻고 싶다. 당신은 누구냐고. 백 명, 천 명도 넘는 팔로워를 가지고 있어도 평범한 어느 날 외롭다고 느낀 적은 없었는지. 당신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묻고 싶다.

디지털 문명에 재물로 바쳐진(스스로 바친) 나는 수많은 정보들에 휩쓸려 허덕이고 있었다. 이대로 아무것도 이루지도, 아무것도 채우지도 못한 채 폰이 꺼지듯 내 인생도 허무하게 꺼져버린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이렇게 살아왔던 것이. 


지금이라도 붓을 들고 인생의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고 색을 칠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디지털과 반대되는 의미인 아날로그(analog)는 길이와 넓이, 깊이로 자료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 디지털시계와 아날로그시계를 생각하면 쉽다. 숫자로 표시되어 초단위로 계산되는 디지털시계와는 달리 아날로그시계는 시침, 분침, 초침이 움직여 공간을 줄인다. 단순히 숫자가 아니라 길이 사이의 공간이라는 개념을 가진다. 우리의 존재를 그려 넣을 수 있는 바로 그 공간을.


모든 자연은 균형을 맞춰 흘러간다. 여자와 남자, 아침과 저녁, 하늘과 땅, 선과 악, 느림과 빠름 등. 그러다 보니 간혹 쉽고, 편안함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두려울 때가 있다. 출근길 고개를 푹 숙이고 휴대폰만 뚫어져라 보며 외로움을 달래는 우리를 보면 적당하고 현명한 활용 수준을 넘었다는 생각이 든다. 심각한 삶의 불균형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것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앞으로 10편에 걸쳐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삶을 살아보려고 한다. 더 늦기 전에 디지털 문명에 심각하게 치우쳐진 시소의 반대편 끝 쪽에 꼬두발을 서서라도 올라가고 싶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겠지만 나의 무릎을 밟고 올라가 당신도 내 앞에 앉아줄 수 있을까? 허리를 꼭 잡고 힘을 더하면 이 연재가 끝날 땐 더이상 외롭지 않고 쿵덕쿵덕 함께 웃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글. 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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