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한 것을 원했다. 빨리 일을 처리하고 싶었고 간편하게 대화하고 싶었고 매일 어디서나 음악을 듣고 싶었다. 그런 것들을 개발해 냈고 마침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편리해진 삶을 살고 있다. 내가 아날로그 라이프를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런데 우리는 마음조차 편리해질 원하는 걸까?"라는 물음에 "그렇진 않아."라는 대답을 했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상상해보자.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영화를 떠올리면 쉽겠다. 내가 막 사랑하는 남자와 키스를 하려는데 마음속에서 '입술을 갖다 댄다. 무언가 들어오면 나도 받아친다. 입술을 뗀다. 사랑한다고 말한다.'를 편리하게 알려준다면 어떨까? 나는 내 마음속 감정들에게 '나를 내버려 둬! 내 감정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그런 그런 거라고!'라고 말할 것이다. 그럼 디지털화된 감정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Delete'키를 누르는 것이다. '삐----'.
상상만 해도 마음이 편리하다는 것은 재미없다. 마음만큼은 100% 디지털화되지 않도록 뜨끈 미지근하고, 사랑스러운 아날로그가 적당히 필요한 것 같다.
이번 아날로그 라이프를 살며 한 일은 편지를 쓴 일이다. '뜨끈 미지근하고 사랑스럽다'. 마음을 표현하는데 편지만큼 설레고 예쁜 수단이 있을까? 편지는 마음을 종이에 그리는 일이다. 빼뚤빼뚤한 글씨체를 보면 속이 다 보는 것같이 솔직하다. 또 별다른 기술 없이 그림을 그려도 되고 향수를 뿌려도 된다. 종이는 오감을 허용한다. 그렇게 보자면 편지야말로 디지털보다 더 혁신적인 도구 같기도 하다.
디지털은 쉽게 만들어지고 쉽게 지워진다. 나의 경우도 친구들과의 메일을 잘 두었다고 해놨는데 복사 버튼을 누른다는 것을 삭제 버튼을 눌러서 1초도 안돼서 모든 것이 아주 깔끔하게- 처리된 적이 있다. 하지만 서랍 깊숙이 잠을 자고 있는 20년 이상된 편지들은 색이 약간 바래긴 했지만 그 어릴 적 모습 그대로다.
편지 안에 그림까지 그려 넣었다. 글씨를 못 쓰고 글 솜씨가 없으면 어떤가. 그냥 그것이 나이고 이게 내 솔직한 마음인데. 멋을 부리러 편지를 쓰는 것이 아니라 솔직한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편지를 쓰는 것이니까.
밖에 나와 빨간 우체통을 찾았다. 아날로그의 불편함이 시작되었다. 어쩌면 그리 불편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디지털화된 내 몸은 '아, 클릭 한 번으로 끝낼 것을 왜 이렇게 멀어.'하고 투덜 될 신호를 보냈다. 아파트 단지 앞에서 겨우 멀뚱하게 서 있는 빨간 우체통을 발견했다. 입구에 편지를 넣는데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 괜히 머쓱해졌다. 왜 편지를 보내면서 머쓱해져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토록 아날로그와 멀어졌던 것일까?
진심을 보내는 것은 결코 편리하지 않다. 하지만 불편함을 감수한 만큼 진심은 누군가의 손과 눈, 그 마음 안에 깊게 와닿을 것이다. 더 오래오래 소중한 곁이 될 것이다. 닳고 닳았지만 보면 웃음이 나는, 언제나 변치 않는 서랍 속 편지들처럼.
글. 강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