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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작 Oct 28. 2017

샐러드 소개팅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남자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샐러드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자리에 앉자 나를 한 번 올려다보더니 다시 샐러드로 시선이 고정됐다. "왜 그래요?" 내 물음에 남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어깨를 살짝 들어 올렸다. 포크로 샐러드를 이리저리 뒤적이던 남자는 갑자기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샐러드 같은 거 진짜 안 먹거든요?? 찍어서 친구들 보여주려고요."  


그 시각 수진은 미영의 베이비샤워를 위해 필요한 소품을 고르고 있었다. 매장엔 계속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왔다. 수진은 잔뜩 소품이 담긴 산타 주머니를 낑낑대고 트렁크에 싣고는 미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출발하면 30분 후에 도착할 것 같은데, 지민이는 왔어?" "아니~ 아직 안 왔어. 오늘 소개팅한다고 했었는데 아까 전화하니까 안 받더라. 잘 안 풀렸나 봐. 어어 국 끓는다 조심히와!" 미영이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뭐야 아직 지민이 안 왔어?" 수진이 빵빵한 소품 주머니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곧 올 거래. 아까 시무룩한 목소리였는데... 너 또 지민이한테 소개팅하지 말라느니 그런 소리 하지 마~! 알았지?!" 수진은 소파에 앉아 얌전한 고양이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띵동'


"지민이 이모 왔다~" 수진이가 활짝 웃으며 문을 열었다. 우리는 동그란 식탁에 앉아 보글보글 끓고 있는 나베를 조용히 바라봤다. 솜씨 좋은 미영이 만든 알록달록한 반찬들도 예쁜 모양으로 담겨 있었다. 눈치를 보던 미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왜 소개팅 잘 안됐어?..... 못된 놈, 천하에 못된 놈! 재수 없는 놈! 더러운 놈! 바보 같은 놈!!" 임산부의 흥분한 목소리에 조금 웃음이 났다. "나 아무 말도 안 했거든."


"시작해봐." 수진이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남자의 얼굴이 조금씩 생각났다.

"샐러드가 싫은 거야, 내가 싫은 거야? 아니지 샐러드를 시킨 나! 결국 내가 싫은 거겠구나. 소개팅 같은 거 이제 안 할래. 내가 점점 콩알이 되어가는 것 같다고. 영화의 '영'자도 모르는 사람이고, 더군다나 '음악'도 별로 관심 없대. 샐러드를 보는 눈빛이 마치 원시인이 스마트폰 본 것 같더라니까? 그래 맞아. 내가 예뻤으면 영화도, 음악도, 샐러드도 좋아하는 남자였겠지. 솔직하게 말해봐. 나 못생겼어? 나 여자로서 매력 없냐고." 게슴츠레한 눈으로 수진이 내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어디 보자. 못생겼나~" 미영의 휴대폰 진동이 계속 울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미영은 받지 않았다. "그냥 샐러드 싫어하는 남자가 최악인 거야.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고기만 먹다가 40대 되면 중성 지방 뚱땡이 아저씨가 돼있을 걸? 그런 사람이 떨어져 나간 거 천만다행인 거라고. 좋은 사람 분명히 있어." 수진이 말을 이었다. "네 탱탱한 엉덩이를 보고도 풀때기만 쳐다보고 있었다니? 그 남자 참 안됐다~~ 어쨌든, 난 늘 말하지만~! 결혼이나 남편 같은 거 반대야. 욜로 인생! 피곤 안 하고 좋잖아?" 우리는 동시에 수진을 째려봤다. "예쁜 너는 늘 애인이 따르겠지만, 나는 평생보장 보험계약서 같은 거 찍어야 안심이 된다고." 내가 쏘아붙이자 미영이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지민아! 방금 아가가 뱃속에서 그랬는데~! 신세대 남자의 눈으론 너가 제일 매력 쟁이래. 특히 웃는 모습!" 수진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너는 좋겠다~ 태어나지도 않은 훈남한테 매력 있단 소리도 듣고~" 나는 밥을 한 수저 퍼서 입에 쑤셔 넣으며 활짝 웃어 보였다. "히이- 맞아! 나 매력 있어. 그럼 지민이 칭찬 릴레이 게임하자!" 미영이 함께 웃었다. "그래! 딱 10분만!"


간장이 촉촉이 배어든 고기가 뜨끈한 국물과 함께 입 안에서 샤르르 퍼졌다. 미영이 만든 샐러드는 아삭아삭 식감이 좋았다. 그때 미영은 휴대폰에 뜬 문자를 읽었다.


"전화 안 받네. 나 내일 일 있어서

크리스마스 같이 못 보낼 것 같다고."




미영은 휴대폰을 식탁 아래로 감췄다.






KANGJ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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