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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작 Dec 09. 2017

나는 고양이를 약간 무서워한다

동물에게 무시당하는 특정 부류의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들 중 몇 손가락에 꼽히는 사람일 것이다. 나를 무시했던 동물들을 생각하는 건 끔찍하지만 굳이 되뇌어보자면... 대공원에서 내 손을 물겠다고 위협했던 기린, 키워보려고 데려왔다가 나를 쳐다도 보지 않았던 슈나우저, 공원의 자판기 먹이로 유인해도 관심 없었던 사슴, 방 안으로 나를 유인해 손을 물었던 못생긴 갈색 푸들, 카페에서 사람들의 시선에 지쳐있었던 비만 고양이,  인형과 사랑에 빠진 게스트하우스 말티즈 등이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대부분이 개라는 사실이 놀랍다. 어릴 적 우리 집에선 잘생긴 갈색 치와와, 유리(믹스견이라 입이 길었고 다리가 튼실했습니다)와 똥개(미안) 영심이를 키웠다. 그때도 나는 역시 그들과 별로 친하지 않았던 것 같다. 유리와 영심이가 언니에게 안겨있는 사진은 몇 장 발견했지만 나의 경우엔 마루 위에서 영심이에게 소리를 지르는 듯한 사진 한 장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난 크면서 동물을 무지 키우고 싶어 했다. 특히 초등학교 5학년쯤 됐을 때는 그 병이 심각해져서 유기견을 데려다가 인색했던 이웃집 아주머니께 잠깐 맡아달라고 부탁까지 했으니 말이다. 중학교 2학년 정도가 될 때까지 치밀하게 엄마를 조르다가 마침내 똥개(미안) 한 마리를 키우게 됐는데, 훈육의 어려움을 느끼며 피골이 말라가다 결국 그 아이를 다른 분께 보내버렸다. 당시 큰 죄책감을 느꼈지만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던 것 같다. 그러나 어느 날 실수로 내뱉은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고는(가슴 아픈 사연), 그 후부터 애완동물을 멀리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저주가 시작된 것인지 만나는 동물마다 나를 무시하고 있다. 

그리하여 나는 개에게는 일종의 죄책감과 기분 나쁨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그럼 고양이는 어떤가? 어릴 적 어머니는 내게 고양이에 대한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다. 그 이야기는 외할머니가 어린 소녀일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외할머니가 어린 소녀일 때는 사람들이 고양이를 불운의 존재로 여겼다고 한다. 어느 날 저녁 외증조할머니께서 밥을 지으러 아궁이 쪽으로 가셨는데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새끼들과 함께 그 아래에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외증조할머니는 이것을 불운으로 여겨 "고양이들은 새끼들을 너무 많이 낳는다."라고 할아버지께 이야기하고 잠이 드셨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부엌으로 향한 외증조할머니와 외할머니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했다. 검은 어미 고양이가 새끼들을 죽여서 부엌에 한 마리 한 마리씩 늘여 놨다는 것이다. 엄마는 어린 내게 이 이야기를 해주면서 손사래를 쳤다. 어린 나의 머릿속에 그려진 부엌의 현장과 어미 고양이의 모습은 너무나 끔찍했고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인지 커오면서 고양이를 보면 나는 괜스레 슬쩍 피하거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검은 어미 고양이의 눈이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개에 비해 고양이를 많이 접하지 못했지만, 종종 그들을 만나면 내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너랑 나는 태초부터 친해지지 못해." 그리하여 나는 고양이에게도 일종의 죄책감과 기분 나쁨을 동시에 느끼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왜 내가 개나 고양이에게 무시를 당하는지 이해가 된다. 아니, 사실은 무시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무시당하는 것 같다고 느낀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키워보고 싶다고 어린 강아지를 어미 품에서 떼내어 데려온 나, 힘이 들어 외로운 강아지를 다른 곳에 보내버린 나 그리고 추운 겨울 새끼 고양이가 얼어 죽을까 봐 잠시 아궁이의 온기를 빌리려 했던 어미 고양이를 내쫓았던 외증조할머니. 생명을 소중하게 데하지 못했던 이기심에서 비롯된 죄책감 때문이었다. 


나는 여전히 개에게 무시당하고 고양이를 약간 무서워한다. 그래도 다음번엔 개와 고양이가 내 곁에 가까이 온 게 된다면 '귀엽다'라는 말 대신 나와 같은 하나의 생명체로 이해해보려고 노력해야지. 그러다 너무 소통이 잘 돼서 제대로 무시당한다라는 느낌을 받으면 어쩌지? 


어쨌든 <동물의 세계> 골수 시청자로서 언젠가 초원을 뛰노는 말들과 사슴들, 원숭이들과 화목할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란다. 


  

2017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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