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인정해주지 않은, 내가 있는 곳
어느 힘든 날이었다. 꿈 앞에서도, 사랑 안에서도 자신을 잃었던 그런 날. 갈 회사는 없고, 사랑한다 말해도 들어줄 사람이 없던 날. 늦가을의 어느 날.
나는 한 독서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아끼던 원피스를 꺼내 입고는 문 밖을 나섰다. 저녁놀이 물들 무렵 우린 작은 책들이 쌓여있는 한 조그만 서점 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낯을 심하게 가리는 나는 한참 웃고만 있다 조용히 말을 꺼냈다.
"저는.. 백수고요. 글- 써요."
'백수'라는 말을 꺼내 본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아무런 자존심이 없었고, 무엇 때문인지 솔직하고 싶었다. 습관적으로 그들의 눈동자를 살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뜻밖에 반응이 있었다.
"우와. 그럼 작가세요?"
그들은 커진 눈동자로 나를 또렷이 바라볼 뿐 흔들림이 없었다. 연민이 아니라 순수한 인정이라고 느꼈다.
어느 날 브런치와 어라운드가 콜라보레이션으로 진행한 글 공모전에 나의 글이 당선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힘들었던 때 썼기 때문에 기쁨이 더 컸다. 또 좋아하는 에디터들이 있는 매거진 위에 내 글을 올려둔다는 사실만으로 두근거렸다. 소식을 전하기 위해 엄마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걸었다.
"엄마, 제가 좋아하는 잡지에 제 글이 실릴 거래요!"
"상금이 얼만데? 에이 돈도 안 줘? 뭐야..."
수화기 너머로 그녀의 눈동자를 살폈다.
인정받으려고 쓴 글은 아니었지만 조금은 쓸쓸해진 난, 혹시나 해서 나를 내 자체로 바라봐준 모임의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나라는 사람을 안지 겨우 몇 개월 되었을 뿐인데 그들은 가장 기쁘게 반응해주었고 조촐한 파티까지 준비해주었다. 그 공간 안에서 더 솔직해지고 싶었다. 그럴 자신이 생겼다.
요즘 나의 또래, 20대 후반에서 30대 중후반까지의 사람들을 밀레니얼 세대라고 한다고 한다. 밀레니얼 세대들은 집과 회사가 아닌 제3의 안식처인 '케렌시아'를 찾는 특징이 있다고 하는데
왜 우리가 이런 공간을 찾아 헤매는지 이젠 조금은 알 것 같다.
백수여도 괜찮고
작가여도 괜찮은
제3의 안식처.
우리의 케렌시아.
삶을 살아가는 것을 그대로 바라봐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 당신에게도 그런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아니라면.., 나의 서툰 글이라도 당신을 흔들리지 않고 순수하게 바라봐줄 수 있다면.
2018.
강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