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작 Jun 12. 2018

부러워해도 돼

다만, '나다움'이 있다면




언니는 나의 하나뿐인 고민 상담가였다. 어릴 적부터 마음이 꿀렁꿀렁할 때면 나는 언니 방으로 달려가 엘사를 부르는 안나처럼 문을 똑똑 두드렸고 언니는 그때마다 "또?"라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매번 내 이야기를 들어줬다. 그렇게 수차례 괴롭힘을 당한 것이 도움이 된 걸까(과연?) 신기하게도 언니는 어느새 수많은 사람들을 대하는 진짜 전문 상담가가 되어있었다.


지난주 주말, 인천에 사는 언니가 집에 올라왔다. 아침 식사 후 커피 타임을 가지며 늘 그렇듯 나는 슬며시 내 고민을 털어놓았다. 언니는 들을 준비가 된 사람처럼 온화한 표정이었다. 


"언니, 난 욕심이 많은 사람인가 봐. 이건 하나의 예지만, 캔버스 백을 멘 나보다 명품 백을 멘 사람이 자꾸 부러워 보여. 스스로 '내 캔버스 백을 사랑하자!'라고 외쳐도 그 명품 백이 멋져 보이는 걸? 그렇게 되고 싶은 걸? 유독 꿈을 펼치는 데에서 이런 마음이 불쑥 올라와. 나도 저 사람처럼 큰 물에서 큰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멋진 기업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긴장돼서 땀이 날 정도라니까." 나는 천천히 이야기했고 언니도 답변을 서두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생각이 마음속에 확고한 듯 보였고 잠시 뒤 나를 바라보았다. 


"부러워해도 돼. 지혜야, 욕심이 있다는 건 좋은 거야. 사람이 욕심이 없다면 어떻게 성장하겠니? 명품 백? 그게 외모가 되었든 직업이 되었든 부럽다면 부러워해도 돼. 다만 이것만은 기억해둬. 네 캔버스 백도 정말 멋지다는 거. '나다움'에 대해 소홀히 하는 사람이라면 부러워해서는 안 돼. 이 사람들은 욕심에 휘둘려서 끝없이 아래로 떨어지게 되거든. 하지만 '나다움'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뭐든 부러워해도 돼. 오히려 부러움이 더 좋은 미래의 자극이 될 수도 있으니까." 잠깐 쉬고 말을 이었다. 


"상담하면서 다양한 성향의 학생들을 마주해. 자연스럽게 원하는 곳에 취업이 잘 된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으로 나뉘지. 그런데 신기한 건 취업이 잘 된 A 학생은 B 학생보다 스펙의 모든 면에서 떨어져 있어도 이런 결과가 나온다는 거야. A 학생은 B 학생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 그게 뭔지 알아? 바로 자신감과 자존감이야. 그건 자존심과 자만심과는 달라. 상담을 해보면 어떤 줄 아니? A 학생은 전문가인 내가 조언하는 대로 이력서도 수정해오고 꼬박꼬박 상담도 받으러 오고 면접도 수차례 연습해. 하지만 스펙이 높은 B 학생은 상담 중에도 '어디 한번 해봐라?'라는 식으로 휴대폰을 보고 조언을 귓등으로 듣곤 하지. 자존심, 자만심이 높은 거야. 안타까운 것은 자만심이 높은 학생들 중에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이 많더라. 들리지도 않을 것 같은 목소리로 '저에게 그 자격증은 별로 필요 없어요.'라고 말하면서 몇 년째 취업을 못하고 있지. 얼마 전에 A 학생이 면접에서 합격했다고 좋아서 전화하는데 얼마나 기특했는지 몰라. 처음에는 면접관들이 스펙이 좋은 사람들에게 눈이 갔다가 점차 자신에게 모두 눈을 돌리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었다는 거야. 이 학생이 과연 B의 명품 백이 부럽지 않았을까? 부러웠겠지. 하지만 A는 자신의 캔버스 백을 자랑스러워하며 당당히 멨어. 명품 백이 안 멋지다는 것이 아니라 A는 나다움으로 승부를 본 거라고!" 


불현듯 얼마 전 소개로 만난 모 대기업에 다니는 남자 앞에서 심하게 긴장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자존심과 자만심이 높은 B 학생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앞에서 자신감과 자존감이 높은 A 학생도 아니었다. 맞다. 내가 가고 싶었던 기업에서 화려하게 활동 중인 그의 경력이 조금은 부러웠던 것 같다. 하지만 긴장할 필요는 없었다. 내 캔버스 백도 멋있었기 때문이다. 내게 의미 있는 일을 찾았고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나는 그때 '나다움'에 당당해져도 된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언니가 커피잔을 내려놓고 마음에 마지막 도장을 찍었다. 


"사람은 크게 두 종류인 것 같아. 나다움을 찾은 사람과 나다움을 아직 찾지 못한 사람. 나다움을 찾은 사람은 자신감과 자존감이 높고 나다움을 찾지 못한 사람은 자존심이나 자만심이 높은 경향이 있지. 지혜야, 네가 원한다면 큰 미래를 그려도 좋아. 마음껏 부러워하면서. 하지만 지금의 너는 충분히 멋져. 상담을 하면서 사람들에게도 종종 네 이야기를 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꾸준히 가치 있는 일을 해나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 부러운 상대가 있다 해도 그 상대는 나와 다를 뿐이지.  나다움도 소중하고 부러운 것도 추구해나가면 돼. 그게 진짜 명품이야."


언니의 말이 끝나자, 읽고 있던 책의 한 소절이 떠올랐다. 


'외톨이는 사람들로부터 소외됐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무대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외톨이인 것이다.'

- 86p 




이젠 부러워하는 것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내가 내 무대 위에서 멋지게 나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부러움은 헛된 허영이 아니라 값진 기회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관중석에 누가 앉아 있든 긴장하지 말고 눈을 크게 뜨고 자유롭게 나다움을 보여주기로 다짐했다. 누군가를 흉내 내는 연기가 아니라 오롯이 나 다울 때야 마침내 우리는 큰 기립박수를 받게 될 테니까. :- )   







2018, 여름 바람이 좋은 날

당신의 벗,

강작.

매거진의 이전글 옆에 있어 주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