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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불안 너 거기 있구나

by 강작


아 귀신님 거기 계시는군요


나는 어릴 적 굉장히 겁이 많은 아이였다. 혼자 있으면 온 방에 불을 다 켜놨고 머리도 숙여 감지 못했으며(이유는 귀신 마니아라면 당연히 알겠지요), 잠을 잘 때도 창문 밖에 누가 서 있을까 봐 커튼을 꼼꼼하게 쳤다. 더욱이 몸이 허약해서 잠잘 때 가위에 잘 눌렸는데 항상 가위에 눌리면 귓속에 희한한 웃음소리가 들렸고 겨우 눈을 뜨면 저 구석에 귀신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어느 저녁이었다. 뭔가 기분 나쁘게 잠들었다고 생각했는데 혹시나가 역시나가 됐다. 그날도 어김없이 가위님이 찾아온 것이다. 발가락부터 손끝까지 뻣뻣하게 굳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가위에 눌리면 귀신이 누르고 있는 것이라며 눈을 뜨면 안 된다고 했고 움직이지 못하면 그대로 온몸이 굳어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날은 일주일 내내 가위로 시름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내 마음대로 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괴상하게도 귀신과 대화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사실 내가 귀신을 괴롭힌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귀신도 딱히 날 괴롭힐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온 마음을 집중해(입술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귀신에게 신호를 보냈다. "귀신님, 거기 계신 것 알아요. 그런데 귀신님 제가 잘 못한 것이 있나요? 없다면 재미로 거기 계시는 거예요? 저처럼 재미없는 사람에게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어요. 부탁이에요. 이제 말할 힘도 없으니 그만 쉬러 가세요."


믿거나 말거나 내 간곡한 신호가 귀신에게 전달됐는지 그 후부터는 웬만하면 가위에 눌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점점 커튼도 걷고 자기 시작했고, 혼자 있어도 온방에 불을 켜놓지 않았다. 그때 귀신은 내게 뭐라고 답했을까. 아마 어물정한 미소를 지으며 "나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알았어? 내가 있어도 안 무서워하네? 에이 재미없다."라고 하지 않았을까?



아, 불안 너 거기 있구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편안할 때나 어려울 때나 영원히 함께 하는 것은....? 영원한 사랑의 약속일까. 그랬으면 좋겠지만 답은 불안이라는 반지다. 불안은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반지처럼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을 어지간히 괴롭히곤 한다.


불안이 '0'인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아 그런 사람이 존재할 수도 있다. 시간 여행자나 미래를 볼 수 있는 자, 그리고 사후 세계의 무언가. 하지만 이러한 초능력을 갖추진 못한 사람이라면 자연히 불안과 함께 살게 된다. 바로 눈 앞에 보이는 '일자리, 건강, 인간관계, 결혼, 꿈 등'에 대한 불안들과 피부로 느끼기 힘든 '우연적인 사고와 죽음에 대한 불안들'.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라도 죽음을 면할 수는 없듯이 불안도 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현재가 불안하다고 미래로 가면 고민이 사라질까? 그럴 리 없다. 불안은 거기서도 악의 없는 귀신처럼 당신을 따라다닐 수 있다. 하지만 불안은 우리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귀신과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불안'에게 잘 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굳이 '불안'을 괴롭히지만 않는다면 그들도 우릴 괴롭힐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불안하다면? 괴상하더라도 불안에게 말을 걸어보면 어떨까.


*여기서 내가 말하는 불안은 '막연한 불안'을 말한다. 억지로 불안한 일을 만들어내서 불안을 조장하지 않고도 미래에 대해 막연한 불안이 존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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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아, 너 거기 있구나. 나 다 알아. 그리고 앞으로 계속 같이할 것도 알아. 그러니까 오늘은 나랑 적당히만 놀자."


불안이 늘 함께 있어도 편안한 단짝 친구 같은 존재가 되면 삶은 한층 편안해진다. 오늘에 최선을 다하며 나와 거친 미래를 함께 살아가는 동업자가 된 듯한 기분마저 드는 것이다. "불안아 오늘도 곁에 있네. 들어봐. 오늘은 나 이런 노력을 해볼 거야. 어때? 우리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때 내 말을 들은 불안은 내게 뭐라고 답했을까.


아마 작게 미소 지으면서 "나 나쁜 친구 아닌데 네가 늘 나를 무서워하더라. 난 네 곁에서 늘 널 응원할 거야."라고 말해주지 않을까?





2018, 한여름

당신의 벗,

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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