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이가 든다는 건

자연으로 완성되어가는 것

by 강작

"지혜야, 나는 두려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언젠가 죽을 거란 사실이.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이제 얼마 남지 않으셨을 거잖아. 가족들이 모여 앉으면 슬픔의 그림자가 마음에 드리워지는 것같아. 엄마는 이제 많이 늙었고. 지혜야, 두려워."


2년 전, 우울증을 앓았던 언니는 힘없는 새처럼 한참을 울었다. 많이 당황했었다. 언니의 삶에 균형이 흐트러져 정상 이상의 어둠이 드리워졌다는 사실에. 그때 나는 "언니, 죽음은 모두가 겪는 일이야."라던지 "기쁜 생각도 많은데 왜 그런 생각을 해?", "그건 그때 가서 걱정하자."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확연히 주름이 늘어가는 엄마, 돋보기안경을 맞춰야 하는 아빠, 치매 증상이 보이는 할아버지, 더 이상 어려 보이지 않는 친구들의 얼굴 그리고 이젠 너무나 당연스러워진 거울 속 내 모습까지. 세월이 흐를수록 슬픔의 주름이 하나하나 느는 것 같아 나 또한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회사 임원의 부탁으로 그가 다닌 초등학교 동창들이 엮은 책자를 편집하는 일을 했다. 여든이 넘은 나이의 사람들이 어릴 적을 추억한 글들이었다. 당시는 공부를 하기 어려운 때였기 때문에 그들이 학교에 갖는 애정은 남달랐다. 재미있게 글을 편집하고 있는데 내 마음을 멈추게 하는 문장이 있었다.


"어릴 적 다닌 초등학교에 다시 와 보았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모습이더군요. 교문 앞에 백발이 다 되신 어르신들이 앉아서 말썽 꾸리기들이 등교하는 모습을 보고 계셨던 기억이 납니다. 아, 이젠 제가 그때의 어르신들의 나이가 되었군요. 세월이 조용히도 빠르게 흘렀음을 느낍니다. 우리 동지 여러분, 그러나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지는 것이 아닌 익어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연의 섭리대로 모든 것을 마쳐야 할 때야 비로소 우린 완연하게 익은 것일 겁니다."


나무에서 탱탱히 익은 감이 툭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비로소 완연히 익은 감이 헝클어진 모양으로 흙으로 스며들었다.




작미날3.jpg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슬픔들이 있다. 예를 들면 첫사랑과의 이별,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이별 같은 것들. 모두가 이러한 슬픔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힘들어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당장 오늘 우리에게 닥치지 않더라도 늘 지니고 있어야 하는 슬픔이다.


지난 주말 언니와 공원에 갔다. 푸른 잔디가 깔린 광장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고 부부가 행복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언니에게 무심코 이렇게 말한 것같다.


"언니, 나한테도 주름이 생겨. 나도 저 열매들처럼 익어가는 중인가 봐. 앞으로 더 많은 주름이 생길 테고 마음 아픈 일도 많겠지? 언니 그런데 말이야. 예전엔 나이가 들면 잃어가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자연'으로 하나하나 완성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언니 난, 다가오는 슬픔을 외면하지 않을 거야."


바람이 불어와 나뭇결이 흔들렸다.

언니가 나를 한참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2018, 한여름

당신의 벗,

강작.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 불안 너 거기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