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게 미소 짓는 날들을 위해
"적당히 슬프고, 적당히 기쁜 날들이라... 그게 네가 말하는 작게 미소 짓는 삶이라고? 세상엔 크게 소리쳐 울고 싶어도...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적당히'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니?"
누구보다 잘 알았던 울보
5년 전 퇴근길 나는 지하철 플랫폼 비상등 아래에서 펑펑 울고 있었다. 인생은 엉망이었다. 선배의 갑작스러운 퇴사로 감당하기 힘든 직무를 떠맡아 허덕이는 나를... 모두가 미워했다. 사랑에 푹 빠져 있었던 연인이 돌연 이별을 고했고 나는 어느 카페에서 드라마에 나오는 여자처럼 실성했다. 잘못된 판단으로 재산의 많은 부분을 주식에 넣은 엄마는 최악의 증시 폭락을 경험했고 스트레스로 건강이 악화돼 큰 수술을 받았다.
"세상엔 크게 소리쳐 울고 싶어도...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적당히'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니?" 친구의 목소리가 귓가에 윙윙거렸다.
12시가 넘은 줄도 모르고 나는 그 붉은 비상등 아래에 서있었다. 알았다.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는 걸. 내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라는 걸. 더 크게 소리쳐 울고 싶었지만 눈물을 닦았다. 그리곤, 어둠이 짙어진 위기를 정상으로 맞추어보겠다고, 내가 그렇게 만들어 보겠다고 이를 악물고 다짐했다.
슬픔을 당당히 받아들이는 것
주체성을 찾기 위해 먼저 그 지옥 같은 곳에서 퇴사했다. 그리곤 직원이 3명밖에 되지 않은 작은 잡지사로 이직해 내가 좋아하는 일 나다울 수 있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사랑이나 관계에 있어서도 나와 타인 사이에 균형을 잡으려 노력했다. 그 과정 속에선 때론 넘어져야 했고, 외로워야 했고, 홀로 우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나는 장 자끄 상뻬의 그림들을 좋아했다. '정말 저렇게 미소 짓는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면서. 어느 날 그의 인터뷰를 읽은 건 가벼운 우연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행복한 일상을 스케치하는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사실은... 굉장히 끔찍했다고 회고하고 있었다. 일종의 동경으로 미소 짓는 날들을 그리고 있다고. 그는 매일 붓을 들고 슬픔을 감내하고 있는 것이었다.
스스로를 일으켜 천천히 두 팔을 벌렸을 때, 넘어지는 일도 우는 일도 조금씩 줄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적당하게 움직이는 부드러운 기분. 하지만 그 순간에도 여전히 슬픔은, 완전히 나를 놔주지 않았다. 속을 들여다보니, 세상엔 '어쩔 수 없는 슬픔, 외로움, 두려움'같은 것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한편으로 그것들이 적당히 내 곁에 있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매번 크게 입을 벌려 웃는 삶이 자연스러운 삶은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 후, 나는 어두운 감정이 몰려올 때마다 그들을 옆에 두기로 했고 또다시 닥칠 수 있는 위기를 당당히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저도, 계속해보겠습니다
독립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지인이 경제적인 이유로 자신만의 공간을 접고 구에서 운영하는 카페 한편으로 들어갔다. 그러면서 맡게 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고(전혀 바리스타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이 바리스타가 되어야 하는 일 등) 그는 무척 힘들어했다. 그와 나눈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카페가 모두 끝나면 혼자 생맥주 한 컵을 몰래 따릅니다(술도 잘 못 마시면서). 그리곤 조용히 중얼거립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무자비한 융자 빚에 답이 없는 청구서들이 쌓여 가는 상황에서 돈이 안 되는 일을 하며 끙끙되고 있는 저에게 또 중얼거립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알바가 끝나면 저녁 11시 30분, 막차를 타고 집에 들어와 밀린 작업을 합니다. 졸음이 몰려와 견딜 수 없을 때 '계속해보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잠자리로 향합니다. 막내가 아빤 잠꾸러기라고 핀잔을 늘어놓으면 발꿈치로 다른 쪽 다리의 정강이를 두드리며 '계속해보겠습니다.'라며 아침이 시작됩니다."
작미날(작게 미소 짓는 날들)을 처음 쓰자고 결심했을 때 나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대단한 행복을 추구하려는 욕심과 그 반대편의 허덕이는 삶. 그 모든 것들로부터 말이다. 이번 작미날 매거진에 목표한 발행을 마치며 나는 당신에게 '삶의 균형을 맞추는 10가지 방법'같은 것들을 제시하지 못한다. 하지만 매번 발행 버튼을 누르며 내가 분명히 느낀 것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계속해보겠습니다'
논리적인 결론은 단 하나.
헛된 욕망이든/ 굉장한 실패든/ 상관없이 정면으로 응시하고 방향을 정해 걸어가야 한다는 것.
손에 땀을 쥐며 부들부들 떨고 있는 우리는 벼랑 끝에 있지 않다. 나는 우리가 한발 띄어 그곳을 짚는다면 길이 열릴 것이라 믿는다. 그 길 위에 분명 우리의 미소 짓는 날이 있을 거라고.
그래서, 오늘 밤도 조용하게,
"계속해보겠습니다.
저도, 당신과 함께 계속해보겠습니다.
또다시 선물처럼 찾아올
작게/ 미소 짓는/ 날들을 위해"
2018, 영원한 계절
당신의 벗,
강작.
"음성 콘텐츠는 다음 주에 올리겠습니다. 서툰 감정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
참고로 그림을 잘 그리고 싶었던 어느 작가(저임)의 서툰 그림도 봐주셔서 감사했어요. (하하)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