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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작 May 12. 2021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반신 마비예요. 오른쪽은 아예 못 쓰고 왼쪽은 조금 움직여요." 수술실을 나온 의사의 말이었다. 당신이라면 어땠을까. 어제까지 생신상 앞에서 프레지아 꽃을 들고, 식탁 위에 치킨과 피자를 잘 찍으라고 자랑해야겠다고 환하게 웃으시던 엄마가 저런 판정을 받았다면. 


코로나 시국이라 중환자실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는 가족들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병원 밖으로 나왔다. 그 밤 낯선 제주에서 빨간 간판 앞 검은 그림자 셋은 어찌할 바 모른 채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우주 영화 속 우주복을 입고 낯선 행성에 떨어진 우주인들 같이. 


그 후 2주간 우린 엄마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병원 규칙 상 육지에서 온 사람은 코로나 검사 후 2주간 격리를 해야 했고 급하게 구한 간병인으로부터 엄마가 의식은 명료하다는 이유로 중환자실에서 일반실로 옮겨졌다는 소식만 듣게 됐다. 


"다리가 너무 저리다고 하는데 간병인들은 다리를 주무를 수 없어요. 다른 환자들이 보는 것도 그렇고." 곤란하다는 간병인의 말에 속이 시커멓게 타 들어갔다. 병원의 규칙이니 뭐니 당장 뛰어 들어가 손가락이 사라져도 좋으니 엄마 다리 좀 주물러드릴 수 있다면.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간병인으로부터 필요하다는 물품을 사주는 것뿐이었다. 


그 사이 제주에는 벌써, 봄이 왔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큰 벚꽃 나무들이 하얗게 변했고, 바람에 맞춰 아름답게 떨어지고 있었다. 매해 가슴을 설레게 하는 온화한 풍경이었으나 그때의 봄은 낯설게만 느껴졌다. 사실은 모든 게 낯설었다. 서울 집이 아니라 제주라 더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엄마의 사고 후부터 거리에 걸어가는 사람들도- 바닥에 조그맣게 핀 꽃도- 심지어는 하늘도 낯설게 느껴졌다. 저들은 우리 엄마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고 있을까? 당연히 모르겠지만 왠지 그것이 이상했다. 고작 며칠 전에는 그들과 나도 같은 사람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미니백을 어깨에 메고 건널목을 건넜고 음악을 들으며 회사에 갔다. 하지만 지금은 급하게 집에서 가져온 검은 외투를 걸치고 '보호자 출입증'을 목에 낀 채 방황하는 사람이었다. 당연한 일상들이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니었고, 엄청난 행운이라는 사실이 그림자처럼 따라왔다.


너무 뻔한 말이라 나 또한 당신과 같이 잊고 살았다. 불행한 이유를 입증하고 행복할 이유를 찾아다니기에 바빴던 일상이 그 자체로 행운이었다니. 굳이 몸으로 체득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그냥 어떤 운 좋은 사람들처럼 책으로 읽고 그 진리를 알고 지냈다면. 웃기지만 오래전부터 내게 주어져왔던 기회들.


오늘의 소원이 있다면, 엄마가 얼마 전에 입은 화상에 봄꽃 같은 새살이 돋아나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이제 추스르고 점심밥을 좀 먹어야겠다. 



글. 강작(@fromkangj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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