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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작 May 14. 2021

인간의 탈을 쓴 천사

만약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족 빼고 아는 사람을 오직 한 명만 만들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이 그녀를 선택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녀는 내 가까운 친척도 아니고, 내 오래된 친구도 아니며, 내 애인도 아니다. 그녀는 몇 년 전 브런치를 통해 연이 닿아 종종 손편지를 주고받던-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작가님이었다. 


진귀한 보석은 흙탕물 안에서 더욱 빛을 발해 눈에 띄기 마련. 흙탕물로 범벅된 상황이 된다면 그때야 비로소 자신의 인간관계 중 누군가가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하며, 그 자체로 아름다운지 알게 된다. 그녀는 정확히 말하자면 후자에 속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관계였으니 오래된 친구처럼 소중함을 요구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것은 맞다. 그러나 그간 몇 번의 손편지를 나누고, 작가님의 책을 받아서 읽고, 손그림을 보내며- 나는 그녀를 언젠가 만날 소중한 사람으로 마음 한구석에 간직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그 어떤 사람들보다- 내가 힘들 때 '어떻게 이럴 수 있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장 아름답게 다가온 사람이었다. 내 사고 소식을 들은 지인들도 안부를 물으며 고마운 위로를 주었지만, 그것은 나라도 그랬을 법한- 안타깝지만 남일에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선에 머물렀을 뿐이었다. 


낯선 제주에서 일어난 뜻밖의 사고. 병원에서는 제주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은 괜찮지만- 육지에서 온 사람들은 2주간 격리를 해야 병원에 들어올 수 있다고 했고, 그러는 사이 엄마의 간병인을 얼른 구하라며 재촉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나머지 가족들은 직장 일 때문에 서울로 다시 올라가야 했으며 나는 하루 8만 원씩 하는 호텔비가 감당이 안되어 단기로 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디서 간병인을 구해야 할지, 어디에 집을 얻어야 할지 눈앞이 깜깜했다. 그렇게 꾀처럼 떠오른 한 사람이 제주에 살고 있는 그녀였다. 택배를 주고받은 적이 있어서 휴대폰 번호를 알고 있었고, 그간 편지로만 소통을 해와서 휴대폰으로 연락하는 것을 우리만의 금기(?)처럼 여겨왔는데 이번엔 문자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내 사정을 듣고는 제주에서 유명한 맘 카페를 서치하여 어느 간병인 회사가 좋은 지 알려주었고, 친구에게 물어서까지 내가 살 곳을 알아봐 주었다. 나는 이러한 정보를 주는 것도 고마웠지만, 다른 가족들이 다 떠나고 아픈 엄마까지 볼 수 없는 상황에서- 급하면 자신이 엄마를 보러 들어가겠다는 그녀가 이 낯선 땅과 이런 상황 속에 같이 있어준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했다. 


더욱 나를 기겁(?)하게 만든 것은 며칠 후였다. 제주도민인 자신이 엄마를 한번 보러 가겠다고- 전달해드릴 게 있다고 하였다. 내가 알기로 그녀의 거주지는 이 병원으로부터 한참 먼 거리인데, 어찌 여기까지. 그녀가 오기로 한 날 나는 병원 옆 작은 카페에 앉아 있었다. 저기 앉아 있는 사람이 그분일까? 하고 말을 걸어봤지만- 고개를 흔들며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초조하고 겁이 나는 마음 위로 설레는 긴장감이 돌았다. 


먼저 병원에 들어가 엄마를 만나고 오겠다고 했고, 잠시 뒤 나는 '혹시.. 강작님?'하고 얼굴을 내민 작은 몸에 하얀 여자를 만났다. 내 초췌한 몰골을 보고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뜬 그녀는 자리에 앉아 엄마와 내가 많이 닮았다고 말했다. 왠지 그녀를 만나자마자 울 것 같았지만 꾹 참았고, 우린 서먹하지만 조용히 편지하듯 대화를 나눴다. 엄마의 상태는 몇 마디 이야기하고- 우리가 좋아할 만한 글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그녀가 글을 쓰기 위해 준비하는 방법과 과정들을 들을 수 있었다. 잠깐이었지만 모든 것에 있어 배울 것이 많은 분이라고 생각했다. 30분쯤 느린 대화를 나누고 헤어지며 그녀는 나를 안아주었고, 나는 울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엄마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녀가 선물을 가져왔는데, 쇼핑백을 들여다보니 너무나 놀랄 것들이라고. 자신이 다 삶아서 차곡차곡 접어온 가재 수건 여러 장과 우유병, 침대에 걸어 볼 수 있는 휴대폰 거치대, 옷걸이 등.. 엄마는 가족이라도 이렇게 생각 못한다고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그리곤 자신의 가족사에 대해 이야기하며 엄마를 차분히 위로해주었다고 했다. 나는 여러 번 '어떻게 이럴 수 있지'라는 말이 나왔다. 내가 반대의 입장이라면 이랬을까 생각하니 부끄러웠다. 


지금도 입원 중인 엄마 곁엔 휴대폰 거치대가 늘 함께 하고, 매일 그 가재 수건들로 몸을 닦는다. 힘들 때면 그것들을 본다. '아 맞다, 천사가 있지. 우리에겐 천사 같은 마음들이 있지.'하고. 


나는 늘 어느 한 구석에 부자고 직장 좋고 예쁜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런데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은 천사의 날갯짓 한 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 아름다운 사람을 통해 내가 조금 더 어른이 된 것- 같다. 





글. 강작(@fromkangj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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