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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작 May 18. 2021

퇴사 후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

엄마의 침대 아래 담요를 깔고 잔다. 아니 눈을 감고 있는다. 엄마가 아파 뒤척이면 부엉이처럼 눈을 뜨고 미어캣처럼 일어나 상태를 살핀다. 보호자는 야행성 동물이 되어야 한다. 환자의 고요한 숨소리가 들리면 그때야말로 잘 수 있는 유일한 기회지만 나는 그 시간이 소중해 눈을 뜨고 생각을 한다. 이곳과는 별개로 내 안에 들어있는 고유한 것들을. 꿈을 품고 달려 나가고 싶은 모험의 세계를. 


서른 살이 지나고 나서부터 뚜렷하게 나이를 세고 있지 않아 정확하진 않지만, 나는 꽤 많은 나이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 너머에 내가 발견하지 못한 진귀한 모험들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영화감독이나 과학자나 무당도 모르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퇴사 후엔 그런 것들을 발견하고 싶었다. 멀리 여행을 떠나 낯선 인연들을 만나고, 자연을 맨몸으로 부딪히며 마치 <월든> 속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살아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죽음이 다가왔을 때-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인생이 아니라 내 인생을 발견하고 탐구하며 살았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을 접어 작은 병실 창문 밖으로 날려 보내는 것뿐. 도대체 인생은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을 준 것일까- 하곤 묻는다. 달빛에 잠든 엄마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조심히 들이마시는 숨에 작은 불안을, 내쉬는 숨에 작은 안도를 느끼며.


어떤 타인은 내게 말했다. 아픔이 강작에게 작가로서 귀중한 기반이 될 거라고. 슬픔으로 만들어진 잉크에 펜을 담글 수 있는 작가가 되려면 그만큼 큰 용기를 갖추어야 하는 것일까. 어쩌면 신이 내게- 모험을 떠나기 전 반드시 필요한 용기를 주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프게도- 가장 사랑하는 엄마를 통해서. 



글. 강작(@fromkangjak)


추신.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고 싶다. 그래야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다시, 돌아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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