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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작 May 22. 2021

당신의 벌은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받는다

세상이 어리석은 사람에게 사랑을 가르치기 위해 벌을 준 것 같다. 가장 사랑하는 엄마를 통해서. 


엄마가 사고 나기 며칠 전, 언니와 나는 새로 이사를 하며 받은 온갖 스트레스를 엄마에게 풀고 있었다. 엄마는 작은 몸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너희는 왜 그러냐고 내가 죽는 꼴 보고 싶냐고 말하곤 눈물을 흘리셨다. 몇 시간 뒤 일방적으로 건넨 엄마의 화해로 우리는 진정하기로 했고 엄마는 그 답답함을 풀기 위해 며칠 뒤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그녀는 알지 못했다. 두 밤을 자기 전, 딸들에게 내린 벌을 자신이 받게 될 줄은. 


왜 세상 대부분의 엄마들은 자식을 끝까지 사랑하는 가. 사랑이 깊은 엄마들의 자식들은 왜 어리석은 가. 


엄마의 사고 소식을 듣고 회사를 뛰쳐나와 자연스레 퇴사가 된 나는, 제주에 머물며 엄마의 간병인이 되었다. 간병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척추골절, 척수신경이 손상된 환자는 매 순간 두 다리에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고 그럴 수록 내 마음 속 상처는 깊어졌다. 악바리 근성을 다 끌어모아도 종일 다리를 주무르는 일은 버거웠고 결국 엄마의 보조기를 채울 수 없을 정도로 손가락이 뻣뻣해져 버렸다. 전문 간병인들처럼 병실을 깨끗하게 유지하지 못했고, 아픈 엄마는 그런 나에게 자신도 모르게 짜증을 냈다. 그럴 때마다 참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엄마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아침마다 손가락 조조강직이 심해져서 혈액검사를 하게 됐는데 루프스가 예상된다는 소견을 받았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겁이 나고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내일 엄마의 외래진료를 받으러 먼길을 떠나야 하는데, 엄마를 택시에 태워 데려가는 일도 걱정되고, 서울로 가기 전 온갖 서류를 챙기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손가락까지 조금만 건드리면 깨질 듯이 아프니 모든 것이 속상한 마음이었다. 


저녁 식사가 도착했으나 아직 내일 병원에 가서 요청해야 할 복잡한 서류들을 다 정리하지 못해 짜증이 나 있었다. 먼저 식사를 하자는 엄마의 말에, 참지 못하고 버럭 화를 내 버렸다. "아직 정리 못했어. 너무 많고 복잡해. 손가락도 아파 죽겠다고. 내가 아픈 게 누구 때문인데? 이거 정리하고 밥 먹으면 안 돼? 엄마가 허리를 숙여서 가져다 먹던지 알아서 해." 


엄마는 식후 약봉투를 만지작 거리더니 보조기를 찬 채로 다리를 숙여 식판을 잡으려 노력했다. 나는 쳐다도 보지 않았고 다리에 힘이 없는 엄마는 비틀거리며 넘어질 뻔 하다 간신히 침대에 앉았다. 하마터면 넘어져 크게 다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놀란 엄마는 식판 잡기를 포기하고 워커를 가지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30분 정도 보이지 않았다. 


돌아온 엄마에게 서울에 서류를 다 챙겨가지 못할까 봐 부담스러웠고 외래진료받으러 갈 때 엄마가 다칠까 봐 걱정이고 아픈 손도 걱정이 됐다고.. 그래서 엄마한테 화를 냈다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엄마는 네가 너무 했다며 눈물을 훔치셨다. 그 모습을 보며, 오늘 내가 저지른 일을 죽는 순간 가장 후회하겠다고 생각했다. 


외래 진료를 받고 온 다음날 언니가 내 대신 와주었다. 너무 지쳐있었고, 손가락 통증 검진을 하루빨리 받고 싶었다. 병원 문 밖을 나올 때까지 나를 바라보며 우는 엄마에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돌렸다. 언니는 이틀만 자고 엄마와 서울로 올 계획이었고 언니이기에 엄마를 잘 모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언니는 미숙한 간병으로 엄마의 신체에 화상을 입히고 말았다. 내가 며칠만 통증 따위 견디고 엄마를 돌보았다면.. 그런 일을 없었을 것이었다. 



경고할 입장은 안되지만 경고를 하자면, 하늘에선 불효자식이 누군지 다 보고 있다. 그리곤 그에 마땅한 벌을 내린다.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 말이다.


이 글을 쓰면서 가장 많이 울고 있는 것 같다. 

청개구리같이. 바보같이.



글. 강작(@fromkangjak)


추신. 엄마 잘 자요. 잘 자. 내가 너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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