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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작 May 23. 2021

완전히 잘못 살아왔다

30년이 넘게 세상을 제대로 살아오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열심히 취직을 했고, 열심히 돈을 벌고, 열심히 연애를 했지만- 이대로, 나라는 영화가 막을 내린다면 하늘의 별은커녕 바다의 모래알도 되기 힘들 것 같았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사고는 늘 목적지향적으로 살아왔던 나의 삶을 멈추게 만들었다.


스무 살 무렵, 대학생이던 나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혼자 사시는 독거어르신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러 갔다. 허름한 집에 문을 여니 이상한 냄새가 진동했고 그 안에는 갈색 피부의 마른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 계셨다. 우리가 인사를 하고 들어가자 할아버지는 느리게 몸을 일으켜 한 명 한 명을 바라보더니 알 수 없는 말을 계속하셨다. 청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할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요 앞집에 가서 술 한잔씩 하자고 말했다. 나만 여자였고, 같이 간 친구들은 두 명 다 남자라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나는 술을 싫어하기도 하고 봉사를 하러 온 학생들에게 같이 마시자는 것이 비상식적으로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이 괜찮다고 해서 같이 갔고- 소주 몇 잔을 마셨다. 그동안 할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지만 모든 것이 평소에도 늘 그렇듯 익숙해 보였다. 다만 오늘은 함께, 함께할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친구들보다 먼저 일어난 나는 할아버지에게 짧게 인사를 하고는 도망쳐 나오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리곤 봉사활동을 연계해준 사회복지사에게 전화를 걸어 이 불쾌한 상황을 따졌다. 그러자 그녀는 내게 원래 혼자 자주 마시러 가시는데 오늘은 학생들이 와서 기쁘셨나 보다 하고는 '학생, 근데 봉사가 뭐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었다. 내가 쉽게 대답하지 못하자 그녀는 이어 '제가 생각하기에는 봉사는 바라는 것 없이 베푸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왜 그녀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는지 그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살아가면서 무언가 답답한 일이 생길 때마다 그녀의 말이 마치 주문처럼 떠올랐다. 


아픈 엄마는 자신도 모르게 내게 짜증을 냈다. 깔끔하게 정리를 못한다고, 그렇게 머리를 들면 어떡하냐고, 왜 먼저 이걸 안 해주느냐고-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그녀에게는 어리숙한 것 투성이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만약 엄마가 사고만 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지금까지 모아둔 돈을 다 병원비에 쏟아붓지도 않아도 됐을 거고- 이 시간들을 더 재미있고 의미 있게 보내고 있을 텐데 하면서 억울하고 화가 났다. 그래서 결국 엄마에게 차갑게 말하고 말았다. 다 나으면 간병비 톡톡히 챙겨줘야 할 거라고. 이걸 말하면서도 속으로 내가 정말 못된 딸이라는 이중적인 마음이 들었다. 


그날 저녁도 그 사회복지사의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바라는 것 없이 베푸는 것 같아요'하던. 그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봉사활동이라는 것을 하며 어르신들을 진짜 마음으로 위할 줄 모르며, 그저 봉사활동이란 것을 한다는 목적만을 이루려고 했다는 사실을. 그건 마치 열심히만 살아가면 제대로 된 인생을 사는 거라고 착각한 나 자신의 상황이었다. 


나는 엄마를 마음으로 위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사랑이라는 것을 한다는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것일까. 


'오분을 살던.. 사랑을 하고 했다면 이미 충만한 삶을 살았고 하고 있는 것'이라는 영화 <if only>의 대사가 떠오른다. 엄마는 나를 30년 넘게 마음으로 사랑했는데, 나는 도대체 뭘 했던 건지 모르겠다. 내가 우는 것이 당황스럽게 느껴진다. 


남자를 사랑하거나, 친구를 사랑하는 것도 그렇다. 글을 사랑하거나, 꿈을 사랑하는 것도 그렇다. 사랑받을 줄만 알았지- 마음으로 진정 해본 것은 무엇일까. 네가 안 해주면 나도 안 해주고 네가 해줬으니 나도 해주겠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인생- 현명할진 몰라도 사랑하며 살았다고 말할 자격은 없을 것이다. 



글. 강작(@fromkangj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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