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그럼 잘 될거야

by 강작

나의 두 어른에게,


내가 잠적한 몇 달 동안 당신들이 내게 준 편지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제야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한 어른은 매사 시니컬하지만 따뜻하고 한 어른은 매사 따뜻하지만 시니컬한 분이시죠. 아마 두 분이 만난다면 매우 맞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여튼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두 분을 친구라고 부르며 편지를 주고받으니 때론 재밌고 때론 감동적이기도 합니다.


제가 어머니의 간병에 모든 힘을 쏟을 때 당신은 제게 그러셨죠. 엄마에게도 엄마가 사는 별이 있다고. 그걸 인정해야 하는데 그래요, 쉽지만은 않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인정하셨나요.

또 다른 어른은 제게 그랬습니다. 지금보다 조금은 더 자고, 지금보다 조금은 더 먹고, 지금보다 조금은 더 쉬고, 지금보다 조금은 덜 미안해하기를 바란다고. 그래야만 하는데 그래요, 이것 또한 쉽지만은 않더군요.


오늘은 혹 어머니가 계속 복용하고 있는 약이 문제라도 있지 않을까 걱정되어 이리저리 공부를 하였습니다. 아무리 뼈가 약하다고 해도 칼슘제를 장기 복용하는 것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았고, 식품으로 대체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고요. 그밖에 비타민D, 비타민K2 등등 뼈 건강에 관한 모든 정보들을 노트에 적기 시작했습니다. 제 정신이 어땠냐면요? 전혀 차분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시험 종료 3분을 남겨두고 답안을 밀려 쓴 학생처럼 초조했죠. 지금 당장 엄마가 칼슘제 부작용으로 문제가 일어날 것 같다는 상상이 방안을 꽉 채웠습니다. 워워.


종이 치기 3분 전. 번쩍 손을 들고 "선생님! 답안지를 좀 바꿔주세요!"하고 다급하게 외쳤습니다. 선생님은 제게 "답안지가 없으니, 옆반에 가서 하나 달라고 해."라고 했고 저는 황급히 뛰어가 가져왔습니다. 1분 30초가 남아 있었습니다. 손가락이 떨려서 답안지를 도저히 채울 수 없었어요. 곧 울음을 터트릴 것같은 제게 선생님이 가까이 다가와 말하셨습니다.


"지혜야. 아직 시간은 많다. 다 할 수 있어."


그 말씀을 듣고 저는 30초 만에 차분하게 답안을 모두 제대로 적게 되었습니다. 약 1분이나 남기고서요.


걱정과 불안, 초조함이 제 방을 꽉 채울 때면 선생님의 말씀을 생각합니다. 아직 시간은 많아. 엄마는 건강해질 수 있어. 다 괜찮아질 수 있어. 하고요.

제가 엄마를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을 말리진 마세요. 잘못된 방법을 선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대신-


엄마의 별이라는 동그란 답안지에 검은 펜이 번지지 않도록- 숨을 천천히 내쉬어볼게요. 울지 않고. 당신이 제게 조언을 해주려던 말을 스스로 잘 터득한 것이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언제나 고마운,

나의 두 어른에게.


추신. 내일은 병원에 간병을 하러 들어갑니다. 웃을 일이 없다는 엄마에게 제가 조금은 웃음이 되어드리고 싶네요. 아직도 뒷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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