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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작 Jun 08. 2021

내가 나를 위해 살지 않으면
누가 나를 위해 살아 주나

환자가 되면 누구보다 자신을 위해 사는 삶을 살게 됩니다. 부모가 바라는 직업을 가지려 노력한다거나, 잘 나가는 친구에게 비교당하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쓰거나, SNS에서 인싸가 되려 한다거나, 커리어를 쌓고 돈을 많이 번다거나 등등을 (대게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환자가 되면 병실에서 많은 시간을 자신의 병을 고치는 데 집중하며 살아갑니다. 오직 자신을 위해서. 


이전의 그들 모습은 우리와 같아서, 아마도 자신을 위한 삶에 집중하며 사는 것에 서툴렀을 겁니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산다지만 자꾸만 타인의 이목이 신경 쓰여 열등감을 느끼고 질투를 느낍니다. 그러다 '입원'이라는 어찌할 바 없는 극단적인 차단 상태에 놓이게 되면서 모든 것을 멈추어 둔 것입니다. 이를테면 전신 마비인 환자는 그 많던 욕심을 까맣게 잊고 지금은 자신의 발가락 하나만 움직일 수 있기를 바라고 바랍니다. 


왜 우리는 몸이 우리를 멈추게 해야만 정신을 차릴까요? 


몸이 최소한으로 바라는 것은 매일 3시간씩 근력운동 같은 것이 아니라, 그냥 나다운 선택으로 나답게 살아주는 것일 텐데요. 타인을 위해 살아가며 온갖 스트레스를 쌓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주관으로 자신의 행복을 선택하고 자신이 만족하며 살아가는 자신을 위한 삶. 타인을 위해 살아가며 자신의 건강 따위 돌보지 못하는 삶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애완견이나 식물을 돌보듯 자신에게 기본적인 것이라도 신경을 써주는 삶. 그저 이런 것들일 텐데요. 


엄마가 퇴원을 하게 되면, 그때 의사 선생님께 물어봐야겠습니다. 엄마는 이제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갈 준비가 되셨냐고요. 그럼 의사가 말할 테죠. '엄마는 그럴 준비가 되셨어요. 그런데 따님, 다크서클이 턱 끝까지 내려오시고 좀 더 야위신 것 같은데, 입원 좀 하셔야겠네요.' 


그래요. 이만하고 저는 저를 위한 삶을 살러 가겠습니다. 



글. 강작(@fromkangj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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