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작 Sep 28. 2022

어른아이에서 어른으로

어느 날 당신이 혼자 무인도에 떨어졌다고 상상해보자. 부모도 없고 애인도 없고 절친도 없고 애완견도 없다. 의지할 곳이 전혀 없는 상황. 끝없이 펼쳐진 바다엔 구조 신호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그곳에서 당신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 그럼 당신은 어떻게 할까?   


울고만 있을까?


재작년 나는 그 상상 속 무인도에 떨어졌다. 애쓰며 쌓아온 경력을 모두 포기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새로운 꿈을 마음에 품었다. 무모한 퇴사를 앞두던 날, 언제나 인생의 울타리가 되어주셨던 부모가 크게 다쳤다. 엄마는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두 다리로 헤엄쳐 무인도에 있는 나를 구하러 올 수 없었다. 당시 나는 홀로 남은 무인도에서 불안하고 두려워 벌벌 떨고만 있었다.


그럼에도 살아남아야 했다. 누군가가 나를 구하러 올 때까지 망망대해만을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강하게 홀로서기를 해야했다. 그래서 억지로 텃밭을 일구고 그곳에 마음을 단단히 심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훌쩍이는 코를 닦고 바다가 아니라 매일 텃밭을 찾았다.


작은 모종들을 심고 밤낮으로 물을 주며 정성껏 키웠다. 한 뼘 정도였던 녀석들이 무릎까지 올라오고 제법 푸릇해졌을 때부터 나는 조금씩 잠을 이룰 수 있게 됐다.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유지할 수 있겠다는 일말의 희망이 자장가처럼 울려 퍼졌다.

갑자기 불어닥친 폭우 때문에 작게 맺힌 열매들을 모두 떨어지기도 했다. 절망스러웠지만 살아가려면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했기에 잎들로 반찬을 해 먹어보자 생각했다. 의외로 맛있는 식사가 됐고 더 큰 자신감을 얻었다.   


텃밭에 나를 심으며 시작한 상담은 때론 따뜻한 햇살이었고, 때론 시원한 바람이었다. 그녀는 내 마음의 텃밭이 좋지 않은 모양이라도 탓하지 않았다. 그저 객관적인 의견을 들려줄 뿐이었고 내게 텃밭을 어떻게 가꾸라고 설득하지 않았다. 다만 마음을 이해하려고 함께 나의 아픈 과거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마주친 한 지점에 앉아 같이 어린 나를 바라봐주었다. 비바람에 쓰러진 나무들이 스스로 일어나도록.


그렇게 텃밭에 나를 심고 돌보던 어느 날, 나무들이 싱그러운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아삭이는 상추부터, 꼬불거리는 치커리, 포근한 감자와 푸릇한 고추들, 붉고 탱탱한 토마토와 달큼한 옥수수들. 호박, 파프리카, 참외, 가지, 무, 고구마까지 차례대로 풍성한 식재료들을 내어주었다.


수확한 것들로 처음 음식을 해 먹던 날은 신기하고 스스로가 대견했다. 그것들은 그냥 토마토가 아니었고 홀로 인생에 서기로 결심하여 얻어낸 싱싱한 마음이었다. 인생이란 거대한 무인도에 혼자 남는다고 하더라도 시련을 이겨내며 살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의 결과물이었다.



실제의 인생에서는 곁에서 우리를 사랑으로 지켜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두 다리를 잃는다고 하더라도 온 힘을 다해 두 팔을 휘저어 무인도로 헤엄쳐 와 줄 부모도 있고.


그러나

결국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 자신의 텃밭을-

자신이

가장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울/지/말/고


텃/밭/생/활



+ 이후 이야기

상담선생님은 내게 이제 상담을 종결할 때가   같다고 말했다. 나는 변화를 이끌어  선생님께 “삼십  넘게 부모님과 여러 선생님들이 주지 못했던 가르침을 전해주셨어요.”하며 감사를 전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특유의 잔잔한 미소로 “지혜씨가 지혜씨를 성장시킨 거예요.”하고 부드럽게 말해주었다. 예전 같았다면 나는 분명 울었을 것이다. 마음이 동요되면 어린애처럼 눈물부터 났으니까. 하지만  상담 시간과 달리, 나는 울지 않고 있었다. 뜨거운 마음을 스스로 지키고 있었다.


브런치에 글을 꾸준히 썼다. 남편이 집에 들어오지 않는 - 브런치 덕분에 외로움을 잊을  있었다. 무엇보다, 마음을 담아  기록들은 스스로에게 값진 선물이 되었다. 그러니  글을 마치며 나에게, 정말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글. 강작(@anyway.kkjj)


지금까지 [울지 말고 텃밭 생활]을 함께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애정을 전합니다. 글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분의 고마운 시선 덕분이에요. 따뜻한 햇빛과 시원한 바람이 되어주신 최정연 상담 선생님께도 많은 감사를 보냅니다. 어른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한 성장통을 겪고 있는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당신의 인생 텃밭은 언제나, 당신이 스스로 싱싱하게 자라나길 기다리고 있어요. 언제나!

이전 19화 그래도 인생, 한번 살아볼 만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