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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작 Sep 24. 2022

어떤 삶이 잘 산 삶일까?

올 3월, 텃밭을 신청하기 위해 땅주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벌써 다 마감이 됐다고 했다. 신청을 시작한 지 단 일주일이 지났을 뿐인데! 심하게 안타까워하는 내 전화를 매정히 끊기 어려웠는지 땅주는 내키지 않은 목소리로 여분의 땅을 갈아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잘 기획된 다른 텃밭과는 달리 우리 텃밭은 '여기에?' 할 정도의 자투리에 구성되어 있다.


빠르게 마감됐던 이유는 작년 신청자들이 그대로 이어 텃밭을 신청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그들은 텃밭 가꾸기의 노하우를 갖고 있었다. 밭을 어떻게 갈아야 하는 지도, 비닐을 어떻게 씌워야 하는 지도, 고구마는 어떻게 심어야 하는 지- 전혀 모르는 우리와는 달랐다. 남편의 스케줄 때문에 우리는 사람들이 많이 오는 주말이 아닌 평일에 텃밭에 갔기에 이웃들의 조언도 들을 수 없었다. 그저 모종을 사러 갈 때 만나는 농약사 사장님과 간혹 우리를 감시하러 오는 땅주, 그리고 너튜브에게 약간씩의 도움을 얻었다.


그러니 보기만 해도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이웃의 텃밭과는 달리, 우리의 텃밭은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짱구의 하루처럼 엉뚱하기 그지없었다. 제대로 가지치기가 되지 않은 고추 나무와 가지 나무는 거대하게 자라 텃밭의 1/3을 차지했고 모르고 빽빽하게 심은 고구마는 이웃 텃밭까지 삼켜버려 눈살을 받았다(고구마 줄기를 이웃들에게 나눔하는 것으로 논란을 종결했습니다). 농약을 하지 않아 개구리, 거미, 모기, 무당 벌레, 메뚜기 등등 수많은 곤충들의 집합소가 되기도 했다.


어느 때부터 나는 텃밭에 도착하자마자 자연스레 이웃들이 있는지 살피기 시작했다. 우리 텃밭을 흉볼 것 같았기 때문에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재수 없게도(그분들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때의 제 마음이 그랬답니다) 갈 때마다 완벽한 무잡초부부와 마주쳤다. 그들은 바로 우리 앞에서 텃밭을 일구는 부부였다. 우리보다 세네 살 정도 많아 보이는 그분들은 어쩐지 무슨 일이든 똑 부러지게 할 것 같은 재수 없는(그분들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때의 제 마음이 그랬답니다) 기분이 들었다. 잡초 하나 남겨두지 않았고 오이, 호박, 참외는 직사각형으로 세워놓은 철대에 아주 편안하게 안착되어 있었다. 귀여운 글씨체로 쓰여 꽂혀있는 작물 이름표는 완벽함의 상징이었고, 뭐니뭐니해도 완벽의 마침표는 우리를 보고 인사하는 부부의 해맑은 표정이었다.


나는 챙이 긴 모자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썩소를 날리며 작은 목소리로 인사하고는 얼른 풀이 가득한 텃밭으로 숨었다. 최선을 다해 텃밭을 가꾸고 있는데 왜 이 모양인 걸까-하고 한심해졌다. 마치 어릴 때 몇 날 며칠 밤새서 공부를 했는데 친구보다 성적이 안 나오면 화가 나 씩씩되는 그런 기분이었다. 노력했던 모든 것들이 그랬다. 취업도, 결혼생활도, 글을 쓰는 것도 나름대로 열심해 해왔지만 기대했던 성과가 나온 것이 없었다. 운도 따라주지 않는 인생 같았다. 왜 이렇게 세상은 불공평한 거냐고 탓하고만 싶었다.


한참 모기들에게 피를 수혈하며 잡초를 뽑다가 힘이 들어 풀썩 주저앉았다. 땀을 닦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하늘을 바라보게됐다.


그런데-

석양이 지는 하늘은 너무 아름다웠다. 그 붉은빛에 비치는 나의 텃밭도 아름다웠다. 그것들을 바라보며 나는 그동안 어떠한 기준으로 나의 삶을 아름답게 여기지 못했는지- 생각해보았다. 열심히 하고 있다면 그 자체로 나라는 사람과, 내 인생의 행적이 아름다운 것인데 왜 나는 다른 사람과 그 사람들의 인생이 되어야만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잘 산 삶은 친구나, 대중매체, 인물백과가 결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란 걸- 왜 몰랐을까.



작은 약물 통에 담아온 농약을 살포하는 무잡초부부에게 '모기가 너무 많네요! 저희는 먼저 갑니다!'하고 쿨하게 인사하고 돌아왔다. 나의 텃밭 위로 황금빛 석양이 온통 아름답게 물들고 있었다.  


지금 쓰는 이 스무 편의 글들을 올해 브런치북프로젝트에 응모해볼 계획이다. 나는 감사하게도 제1회 브런치북프로젝트에서 은상을 수상했지만 그 이후 여러 번 낙방을 했다. 낙방을 할 때마다 나의 글이 초라해 보였고 작가가 되겠다는 꿈이 흔들린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젠- 출판사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한 번도 펼쳐지지 않은 글이된다고 할지라도- 나의 글들을 나의 삶을 아름답게 여기기며 살기로 했다.


잘 사는 삶, 그리고 잘 쓴 글은- 결국 독자가, 타인이, 명성과 돈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그날의 하늘과 땅이 내게 전해 주었기에.



계속해서 아름다운 글을 쓰고,

언제나 아름다운 작가 되기를-

빛을 보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모든 무명 작가들을 응원한다.




. 강작(@anyway.kkj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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