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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작 Sep 19. 2022

사랑에도 거리두기가 필요하죠

나는 30년 넘게 줄곧 부모님과 함께 살다 서른넷에 결혼을 했다. 그전까지 딱히 독립을 생각하진 않았는데 가족들과 사는 것이 힘들게 느껴지지 않아서였다. 외삼촌은 언니와 나를 보고 캥거루족이라고 했지만 그건 반은 옳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월세값 정도는 아니더라도 생활비를 꼬박꼬박 냈고 집안일도 꽤 돕고 있었기 때문. 그렇다고 해서 당당하게 캥거루가 아니었다고는 하지 못 한다. 독립을 해서 혼자 살았다면 겪어야 했을 무게를 부모님께서 덜어주고 계셨기 때문이다.


돌봐주셨던 것이 돈이나 집안일 같은 현실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부모님은 그보다 훨씬 더 버거운- 마음의 돌봄을 계속해주고 계셨다. 퇴근 후 표정이 좋지 않은 딸의 눈치를 보며 잔소리 대신 맛있는 된장찌개를 끓여주셨고 남자에게 차이고 엉엉 울고 있는 딸에게 '그놈이 싫다고 하면 엄마랑 평생 재밌게 살자!' 하면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야 했다. 자신이 힘든 날에도 자식들 앞에선 울음을 참으셨다. 원하든 원치 않든 부모이기 때문에, 곁에 있기 때문에 자식들을 온 마음으로 사랑해야 했다. 그러니 캥거루는 다 컸어도 따뜻한 주머니 안에서 나가야 할 타이밍을 잊은 채 매일 밤 곤히 잠이 들었다.


독립의 필요성을 처절하게 깨달은 건,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가 사고를 당한 후였다. 나는 수술을 마친 어머니를 제주에서 5개월간 간병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병원에 있는 동안 쓰러지지 않기 위해 일부러 밥을 많이 먹었는데 그런데도 서울에 와 몸무게를 제어 보니 6킬로가 빠져있었다. 손가락엔 관절염이 왔고 맥박은 심하게 빠른 상태였으며 매일 새벽에 엄마가 다치는 악몽을 꾸며 깼다. 그런 나를 보며 의료진들은 '따님, 스스로 건강 잘 챙기셔야 해요. 환자분- 딸도 인생이 있는데 얼른 힘내서 집에 가셔야죠.'하고 걱정을 해주었다. 하지만 나에겐 엄마가 곧 나였으며, 엄마의 인생이 곧 나의 인생이었다. 불안의 연속이었다.


엄마가 점점 컨디션을 되찾을 무렵, 나는 가족들의 권유로 정신상담을 시작했다. 상담시간마다 나는 엄마 이야기를 꺼냈고 눈물을 폭포처럼 쏟아냈다. 상담사는 그런 나를 한참 안타까워하더니 어느 날, 뭔가 해야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차분히 숨을 골랐다. 그러더니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지혜 씨, 어머니가 큰 사고를 당하셔서 지혜 씨가 놀랐고 앞으로도 안 좋아지실까 봐 염려되는 마음은 잘 알아요. 그런데 말씀을 들어보니까 어머니께서 이제 점점 좋아지시고 계신 것 같아요. 그러니 이제 어머니의 삶은 어머니께 맡겨두고, 지혜 씨는 지혜 씨 삶을 만드셔야죠. 지혜 씨는 지금 도움이 되어드리는 수준이 아니라, 어머니와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아픔을 두배로 느끼고 있어요. 어릴 때처럼 부모에게 의지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괴로워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친정에 가면 더 불안하고 힘들고 하신 거고요.

어른이 되셨고, 결혼을 하셨고- 언제까지나 부모에게 의지하고 살 순 없어요. 이젠 부모님이 의지할 수 있는 딸이 되어드려야죠. 차갑게 들릴 수도 있지만 한번 부모님과 거리 두기를 해보세요. 도와드려야 할 때만 도와드리고 친정에 자주 가지 말아 보세요. 전화나 문자도 많이 하지 마시고요.


상담이 끝나고 지하철을 타고 오는데 맥박이 심하게 뛰었다. 처음으로 상담사 선생님께 화가 났다. 나는 너무 걱정되고 불안한데 어떻게 엄마와 거리두기를 하라는 건지, 사랑하는 사람과 거리를 두는 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처방인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아 씩씩대며 돌아왔다. 그리곤 친정에서 엄마와 작은 다툼이 있었다. 불안한 마음을 엄마에게 푼 일방적인 다툼이었다. 신혼집으로 돌아온 나는 서운해서 본의 아니게 상담사의 미션을 수행하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낯선 곳으로 이사를 왔고, 남편도 특수한 직업을 가져서 집에 자주 들어오지 않아 혼자 있는 날이 많았다. 친구에게 전화하는 것도 한두 번이라 평소엔 매일 엄마와 통화를 했다. 그런데 이번엔 상담사의 말대로 도움을 드릴 때만 제외하고 연락을 자제해보았다. 외로웠고 불안했지만 참았다.


그렇게 한 이주가 지났을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마음이 생각보다 괜찮았던 것이다.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는 사이 나는 스스로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됐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는 어떨 때 행복한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오랜만에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더 놀랐던 건, 엄마도 나와 연락을 하지 않은 동안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아프다고 스스로 약해지지 말고 다시 예전과 같이 지하철을 타보겠다고 결심하고, 조금 더 운동을 나가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상담사님 말씀처럼 그동안 내가 아픈 엄마에게까지 마음의 의지를 하려고 했다는 걸.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음에 일정한 거리를 두니 그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삶을 스스로 돌볼 수 있는 힘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다.

솎아주기 전 모습


어제는 빽빽하게 자라난 총각무 모종들을 일정한 간격으로 솎아주었다. 이제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은 표정들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염려하는 마음이 이 모종들과 같다면, 그 마음 모두 소중하지만 -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솎아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자연을 위한, 상대방을 위한, 그리고 나를 위한 참된 사랑의 모양인 것 같다고.


총각무 건강하게 자라면 서툴더라도 김치 담가 부모님께 가져다 드려야겠다. 혼자서도 김치 담글 정도로 컸다고, 웃어 보이면서.




. 강작(@anyway.kkj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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