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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지만 제가 좀 사겠습니다

by 강작

어리지만 제가 좀 사겠습니다



나는 얻어만 먹는 사람들을 원체 싫어한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 처음으로 '선배'가 생겼는데 선배와 같이 식당에서 밥을 먹고 계산을 할 때면, 선배가 "내가 선배니까 낼게. 다음에 너도 선배 되면 후배한테 사야 되잖아."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 않는 선배도 있긴 했는데 뭔가 연장자가 계산을 하는 것이 순리처럼 여겨지는 풍조가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선배라고 부른 사람들은 고작 스물넷, 스물다섯밖에 안된, 평균적으로 돈이 많지 않은 청춘이었는데 말이다.


그럼 나는 스물넷이 되었을 때 후배에게 밥을 샀느냐? 그랬다. 나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이십만 원 삼십만 원 벌고 그 돈으로 한 달을 버티는(그때의 물가로) 상황이었지만, 계산할 시점이 되면 후배도 나도 주춤하며 눈빛으로 '선배가 내야죠.' '선배인 내가 내야지.'라는 암묵적인 사인이 오고 갔다. 그럼 어느새 나는 그때의 선배처럼 "내가 낼게!" 하는 것이다.


문제는, 사회에 나와서부터였다. 더 이상 대학생 때처럼 스리슬쩍 얻어먹겠습니다-하는 말 따위가 통하지 때. 물론 나보다 좀 더 빨리 취업하여, 좀 더 직급이 높고, 좀 더 많은 월급을 받는 선배들이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선배도 있었다. 정말 사회인 대 사회인이 된 것이다. 월급날 "애들 학원비로 월급의 절반 이상이 나가버렸다."하고 말하는 박 과장님께 어떻게 직급이 나보다 높다고 계산을 미룰 수 있을까? 그런데도 놀라운 것은 박 과장님 또한 그때의 선배였어서 옛 풍조가 머리에 박혀 계산할 때만 되면, '에이, 내가 내야지'하는 것이다! 가만히 있자니 체하는 듯한 느낌. "어어..? 저번에도 과장님이 사셨잖아요..?"하고 외쳐도 과장님은 (자기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무언가 때문에) 이미 영수증을 받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보니 그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풍조였는지 느낀다. 정(情)에 의한 것이라면 한 두 번은 사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연장자도 부담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후배를 만나 밥을 먹고 계산할 때가 되면 약간의 어색한 틈을 못 참고, 그때의 선배가 되곤 한다. 나도 모르게 계산서를 가지고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 나가 카드를 내민다. 그럼 가관인 게(?) 어떤 후배들은 잘 먹었다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이런 찝찝한 결말은 두 시간 동안 식사하며 즐겁게 나눴던 대화에 깝깝한 막을 씌우는 듯하다.


나는 나보다 연장자를 만날 때, 연장자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꼭 번갈아 가며 밥을 사고 있다. 아니면 조금 어색하지만 웃으며 '선배! 선배 부담 안 주고 자주 만나고 싶은데, 우리 더치로 하면 어때요?'하고 권한다. 그럼에도 지독하게 그때의 선배인 그들은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내야지 내가 내!!!'하고 생떼를 부리는데(ㅎ), 그럼 나는 얼른 카드를 계산원에게 건네는 식이다. 생떼를 부리는 선배는 어느새 편안한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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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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