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시도만으로 참 잘했어요

by 고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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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요가 스튜디오를 열심히 다닙니다. 아파트에 작은 헬스장이 있지만, 혼자서 BGM도 없고 기구도 부족한 곳에서 운동을 하자니 동기부여가 안되는 순간들이 많아서. 클래스패스라는 앱과 'ONE WEEK FREE'같은 프로모션 프로그램을 이용해 집 근처 요가스튜디오 이곳저곳 '체리피킹'을 한 뒤 한 스튜디오에 정착하게 됐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요가가 운동은 아닙니다. 무릇 운동이란, 무게를 증량해가며 땀을 흘리다가, 다다음날까지 지속되는 기분좋은 근육통까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요가도 제 나름의 재미와 효능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신수양, 명상을 효과의 효과로 꼽습니다만, 저는 '자신감 수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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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를 다녀오면 자신감을 찾게되는 이유는 복합적입니다. 먼저, 복장부터. 미국 요가스튜디오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운동용 짧은 탑과 레깅스를 입습니다. '핫'요가까지 아닌 수업에서도 보통 땀을 내기 위해 높은 온도에서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입니다. 남자 수강생들은 70%이상이 상의탈의를 합니다. 체형도 생김새도 피부색도 성별도 다 너무 다양한 이곳은 캘리이기 때문에 나의 팔과 상대의 팔의 굵기같은것을 비교할래도 비교불가입니다. 거울로 오롯이 들어나는 내 몸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 임할 수 있어요. 밥을 바로 먹고 수업에 가 배가 좀 나와도, 가리기 보단 드러내기를 택하는 중입니다.

자신감을 갖게하는 동작들도 영향을 끼치지요. 제일 좋아하는 동작은 '워리어 포즈'. 이름에서부터 느껴지는 포스. 그리고 워리어 포즈가 더 좋은 이유는 그 동장까지 가는 플로우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보통은 '다운독' 자세에서 발을 앞으로 가져가 런지를 하고 그 자세에서 각종 고관절 스트레칭을 한 뒤, 한참 뒤에서야 상체를 들어올리고 구부렸던 무릎을 펴 워리어 포즈로 들어섭니다. 워리어포즈에서 할 일은 그저 양 옆으로 길게 펼친 손 끝을 우아하게 바라봐주기면 하면 돼요. 한참 엎드려서 피쏠리고 런지하느라 힘들다가, 상체를 들어올려 워리어 포즈로 들어서면 상대적으로 기분이가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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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중요하게 요가를 통해 자신감을 찾는 이유는 끊임없이 날아드는 '칭찬 폭격' 덕입니다. GREAT JOB, BEAUTIFUL JOB, GOOD JOB, AWOSOME JOB 까지. 60분 짜리 수업 하나에서도 ~JOB의 엄청난 응용편을 들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강한 사람이다, 에너지가 대단하다, 수업에서 보여준 에너지를 오늘 남은 하루에 다 쓰라와 같은 말을 듣습니다. 요가로 개운해진 몸, 부지런히 하루를 시작했다는 뿌듯함과 시너지가 나는 걸까요. 어쩌면 형식적 말이겠지만 자신감을 가지게 됩니다.

구체적인 일화를 하나 소개합니다. 때는 처음 핫요가 수업을 갔을 때입니다. 그렇게 땀이 날지도, 물이 절박하게 필요할지도 예상하지 못했던 저는 수업 3분의 1지점부터 지쳐 쓰러졌습니다. 탈주를 수없이 고민했으나, 민폐같단 생각에. 거의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도 못하고 누워 있었습니다. 꽤나 좌절스러웠어요. 나 나름 삼성동 플레이하우스와 금호동의 더블와이짐을 거친 6년차 헬스인인데.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수업이 끝나자마자 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다가왔습니다. 오늘 어땠니. 슬픈 표정을 하며 거의 따라가지도 못했다ㅠㅠ고 답했지요. 그랬더니 그녀는 칭찬을 랩처럼 날렸습니다. 너 진짜 잘했어. 첫 수업인데, 핫 요가에 도전한거 대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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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이처럼 의지 발휘나 시도 자체만으로 칭찬을 받는 경험을 한국에서보다 많이 합니다. 맞아요. 홈페이지 뒤져서 요가복과 매트를 챙겨서 요가스튜디오까지 간 것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한데, 그런 의지를 봐주지 못하고 남들만큼 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에 늘 집중하게 됩니다. 자라온 환경이 그렇고, 한국이 그렇고, 엄격한 기준과 다그침 속에 해냈던 경험이 많았던 관성때문입니다.



칭찬에 인색한 문화가 후진적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성공 문법이었습니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기회가 많은 나라입니다. 미국은 해고가 쉬운 점이 걱정되나요? 미국의 일자리는 우리나라보다 많습니다. 삼성전자에 잘린 반도체 전문가가 갈 곳이 거의 SK하이닉스뿐인 반면 미국은 동종업계에만해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회사가 있습니다. 사회적 안전망이 두텁지 않다고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만 해도 한국보다 벌어가는 돈이 수 배입니다. 그래서 시도 자체로 칭찬받을 수 있는 것은 무한한 기회가 있는 대륙의 특권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삶이 안정될수록 역설적으로 칭찬받아 마땅할만한 일이 점점 줄어듭니다. 잘하면 당연한거고, 못하면 욕먹는 일만 많아요. 새 학위, 이직, 수상과 같이 어떤 좋은 결과도 10대와 20대엔 수두룩했는데, 이젠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면 '자신감 수업'을 영영 그만두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적극적으로 찾아봅시다. 오늘은? 아 그런데 오늘은 정말 관대하게 보더라도 마땅치가 않으니, 내일부터 잘 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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