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선이면서도 동시에 상대방을 위한 선이기도 합니다.
왜 너는 그렇게까지 선을 긋니?라는 질문을 들었습니다. 남에게서도, 나에게서도 종종 튀어나오는 질문입니다. 선을 긋는다는 말이 썩 좋은 표현이 아니고, 실제로도 선 밖의 사람에게 어쩌면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 사람에겐 나의 선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을 것이란 것도 잘 압니다.
중학교 1학년 때쯤 처음으로 절교라는 말을 뱉어봤습니다. 지금은 유치함에 얼굴이 붉히게 되는 단어이지만, 그런 표현을 쓸 수 있을 만큼 순수했던 관계를 가질 수 있었던 그때가 그립기도 합니다. 그 당시의 일기장은 별다를 것 없는 내용들로 가득했었죠. 친구, 그림, 가족, 또 친구. 그렇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채워왔던 단어들을 벅벅 지워야 했던 우정의 소멸은 충격과 슬픔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한 번으로 끝나는 사건은 아니었어요. 그럴 때마다 가슴 언저리쯤에 쿵하고 무언가 무겁게 내려앉는, 그 뻐근한 느낌이 너무도 싫었습니다.
자라면서 나를 설명하는 단어들의 숫자만큼, 더 다양한 관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어린 시절의 그것과 닮은 듯이 보였습니다. 바운더리 없이 대화를 하고, 나를 보여주고, 감정을 나누었습니다. 아, 그런데 전혀 다른 것이었어요. 보여주는 만큼 약점이 되었고, 채워짐이 없이 소모되며, 알게 될수록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제일 견디기 힘든 것은 불편함을 나중에 알게 되는 것이었어요. 이미 많은 시간을 공유했지만 나와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임을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을 알면서도 관계를 유지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유독, 관계에 대한 면역력만은 생기지가 않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나의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면 타인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몇 겹의 선을 긋기 시작했어요. 나를 위한 선이면서도 동시에 상대방을 위한 선이기도 합니다. 나 같은 사람이 사회에 어울리기 위한 방법이지요. 가까워지는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어쩌면 속까지 보여주지 않는 나를 가식적이라고 이야기해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