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간 하지만 닮은 구조
방콕의 전승 기념탑은 늘 빠르게 지나치는 곳이었다.
원형 로터리 한가운데 서 있는 이 탑은머무르라고 만들어진 장소가 아니라 흐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구조물처럼 보였다.
차는 많고, 소음은 크고, 사람이 서서 생각하기엔 지나치게 바쁜 공간.
그래서인지 이곳을 ‘본다’기보다 그저 ‘지나친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을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달랐다. 일부러 찾아갔고, 일부러 멈춰 섰다.
그리고 카메라 줌을 끝까지 당겨 그동안 한 번도 제대로 보지 않았던 내부를 들여다봤다.
뾰족한 탑 아래, 다섯 개의 동상이 서 있다는 사실조차 태국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살았음에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멀리서는 그저 거대한 기둥으로만 보였던 그것이줌을 당기자 총을 든 군인들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구조. 밖에서만 바라보게 설계된 공간.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이 전승 기념탑은 프랑스와의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하지만 그 승리는 결코 단순한 ‘자력의 결과’는 아니었다.
일본의 도움, 그리고 그 도움을 발판 삼아 이후 일본 편에 서게 되는 정치적 선택들.
이 모든 흐름의 중심에는 피분 송크람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동경했고, 국가를 ‘국민’이 아닌 ‘힘’으로 통제하려 했다.
언어, 문화, 복장, 인사말까지 국가가 국민의 몸에 새기듯 규율로 만들었다.
이 탑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는 상징물이었다.
전승 기념탑은 단지 과거를 기념하는 조형물이 아니다.
그것은 무엇을 기억하게 할 것인가를 국가가 선택해 고정해버린 장치다.
군인들의 동상, 위로 솟아오른 오벨리스크 형태, 압도적인 스케일.
이곳은 국민에게 군사력과 군인 집단의 존재를 ‘신뢰하라’고 말하는 공간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름다운 역사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군사 독재의 잔해에 더 가까웠다.
태국의 과거 독재자를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현재가 겹쳐 보였다.
최근 전 세계 곳곳에서 지도자와 시민 사이의 갈등은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더 격해지고 있다.
누군가는 다시 ‘질서’와 ‘안정’을 말하며 힘을 앞세운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 전승 기념탑 같은 건축물들이 떠오른다.
과거에도 그랬듯, 권력은 언제나 기념비를 통해 자신을 정당화해왔다.
전승 기념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차들은 여전히 빠르게 그 주변을 돈다.
하지만 나에게 이곳은 더 이상 ‘그냥 지나치는 장소’가 아니다.
이 탑은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기념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기념은 누구의 시선으로 만들어졌는가.
과거를 돌아본다는 건 결국 현재를 점검하는 일이라는 걸, 이 탑 앞에서 다시 한 번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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