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登場)

열 번은 몰랐고, 열한 번째에 알게 된 날

by 강라마

태국의 어린이날은 1월이다.

정확히 지금 글을 작성하고 있는 2026년 1월 10일 토요일이다.

나는 이 나라에서 어린이날을 열 번 넘게 맞았다.
그동안 단 한 번도 기억에 남은 적은 없었다.
아이와 무관한 삶에서는 그날이 그날이었고, 달력의 작은 글씨 하나쯤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아이가 두 살을 넘기면서 어린이날은 더 이상 ‘지나가는 날’이 아니었다.
집에 있지 못하는 날이 되었고, 밖으로 나가야 하는 날이 되었다.

아이는 아직 어린이날이 무엇인지 모른다.
대신 몸이 먼저 안다.
사람이 많고, 소리가 크고, 자기 눈높이에 맞춰진 세계가 오늘만큼은 도시 전체에 펼쳐져 있다는 걸.

태국에서 맞는 어린이날은 한국과는 조금 다르다.

축하의 대상이 ‘미래’라기보다 지금 여기 있는 ‘아이 그 자체’에 가깝다.
군부대가 문을 열고, 헬기와 장갑차가 전시되고, 아이들은 군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다.

처음엔 늘 낯설었다.
아이를 축하하는 날에 왜 군대가 나오는지, 왜 전쟁의 장비가 놀이처럼 놓여 있는지.

그런데 오늘은 그 생각이 오래 가지 않았다.

아이는 헬기를 보며 웃었고 사탕을 쥔 손을 놓지 않았다.
그 표정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오늘은 내가 아빠인 날이구나.’

부모가 된다는 건 어떤 역할을 새로 얻는 게 아니라 그동안 무심히 지워 왔던 날들이 다시 달력 위로 돌아오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린이날은 늘 있었지만 내 삶에서는 지워져 있었다.
아이를 만나고 나서야 그 하루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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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登場) 2026.01 | Thailand_Bangkok | Copyright © llama.foto(Ga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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