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을 남기는 방식
쭐라롱콘 대학교를 잠시 걸었다.
뮤지엄을 둘러보며 이곳이 단순히 오래된 대학이 아니라,
태국이 스스로 선택한 근대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17년, 왕실 주도로 설립된 이 대학은 ‘태국 최초의 근대 대학’이라는 위치를 분명히 갖고 있다.
식민지가 되지 않기 위해 무엇을 배우고, 어떤 인재를 길러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하나의 공간으로 남아 있다.
이 대학은 그 사실을 크게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작이 하나였다는 점은 공간의 배치와 기록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 지점에서 문득, 한국을 떠올리게 되었다.
한국에도 근대를 이야기할 수 있는 대학들은 있다.
다만 그 시작은 하나로 이어지지 않는다.
선교사에 의해 시작된 교육, 민간이 세운 학교,
그리고 식민지 시기에 형성된 제도까지 각기 다른 맥락에서 등장했다.
그래서 우리는 ‘최초’라는 말 앞에 늘 기준과 조건을 덧붙이게 된다.
무엇을 근대로 볼 것인지, 어디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할 것인지.
쭐라롱콘이 하나의 선택으로 남아 있는 공간이라면,
한국의 근대 대학사는 여러 갈래의 기억으로 나뉘어 있다.
이 차이는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각 나라가 처했던 역사적 조건이 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나라는 근대를 하나의 얼굴로 기억하고,
어떤 나라는 여러 기억으로 나누어 간직한다.
그 차이는 지금 우리가 과거를 설명하는 방식에도 조용히 남아 있다.
과거를 돌아본다는 건 무언가를 평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기준으로 기억하고 있는지를 다시 묻는 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