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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다른 태국> 맑은 어둠

태국 칸차나부리 | 3

by 강라마

칸차나부리에서의 넷째 날, 새벽의 적막을 깨고 특별한 경험을 찾아 나섰다.

오전 5시쯤 기상해 간단히 씻고 장비를 챙겨 호텔 문을 열었다.

6시가 채 안 된 시간, 여전히 어둑어둑한 새벽의 기운이 감돈다.

밤늦게까지 작업하는 삶에 익숙한 나는, 이렇게 새벽에 나와본 게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잠이 덜 깬 그 몽롱함이 오히려 정신을 맑게 만들어주는 기분이었다.

호텔 앞을 걸어가니 이미 탁발에 사용될 음식들을 준비해 판매하는 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분에게 다가가 탁발에 쓸 음식 바구니를 구매하고, 탁발 행렬이 열리는 몬 브릿지로 향했다.


새벽의 시주, 몬족 마을의 풍경

태국 사이드 몬 브릿지 초입에 도착하니 두세 분의 스님이 서서 탁발 시주를 받고 계셨다.

사실 오래전 라오스 루앙프라방에서 수많은 스님이 장관을 이루며 탁발하는 모습을 상상했던 터라,

조금은 '어라?' 하는 아쉬움이 스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구매한 음식 바구니를 스님께 시주했다.


시주를 마치고 아내와 아들과 함께 몬 브릿지를 걸었다.

전날 다리를 걸어봤던 나와 달리 아내와 아들은 처음이라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었다.

낮과는 사뭇 다른 새벽의 몬 브릿지 입구에는 몬족 아이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띄엄띄엄 서서 기념사진 촬영을 해주며 팁을 받고 있었다.

나이가 많은 순서대로 대기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나름 그들만의 규칙이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새벽부터 나와 있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했다.

망설임 없이 가장 어린 친구들에게 다가가 함께 사진을 찍자고 제안하니,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었다.

덩달아 우리도 기분이 좋아졌다.

가장 어린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에게 다가가 촬영을 했는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귀엽게 포즈를 잘 취해주었다.

멀리서만 보던 몬족 어린이를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기회였다.


아이에게 혹시 스님들의 탁발 행렬이 이 다리로 이어지는지 물었다.

다리가 오래되고 나무로만 되어 있어 한번에 많은 스님들이 다리를 건너지 않는다고 했다.

상상했던 모습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안전을 위한 조치라는 생각에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사진 촬영과 짧은 대화를 마치고 아이에게 팁을 건넨 뒤, 나는 다리 반대편(몬족 사이드)으로 향했다.

아내는 어린 아들을 위해 숙소로 먼저 복귀했고, 나만 홀로 몬족 마을의 새벽을 마주하러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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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숨 쉬는 새벽의 에너지

어제 오후에 건넜던 다리였지만, 새벽 공기와 저 멀리 보이던 풍경은 또 다른 감정을 안겨주었다.

낮 시간보다 오히려 지금 이 시간대에 더 에너지가 넘치고 활기찬 기운이 느껴졌다.

몬족 사이드에 도착하니 탁발을 준비하는 주민들과 주변 상점들이 모두 문을 열고 함께 새벽을 맞이하고 있었다.

스님들이 언제쯤 오실까 두리번거리는 그때, 덩치는 좀 크지만 선한 미소를 가진 몬족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이 탁발 행렬을 총지휘하는 듯한 이곳의 반장님 같은 분이었다.

질서 정연하게 현장을 지휘하면서 탁발 행렬이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어디로 걸어오는지,

주말과 평일은 어떻게 다른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아저씨는 다리를 향하는 길목 초입에 가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예약해놓고 기다리고 있으니,

그곳에서 기다렸다가 사진을 촬영하면 좋을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우린 평일에 왔지만, 주말에는 더 많은 사람들과 더 큰 행렬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분의 친절한 설명을 듣고 길 끝으로 더 가봤다.

길가에는 현지인과 관광객들이 몬족 전통 의상을 입고 탁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길 끝에 다다라 잠시 기다리니, 얼마 지나지 않아 스님들이 줄을 지어 걸어오셨다.

생각보다 많은 스님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태국 사이드에서만 탁발을 보고

숙소로 복귀했다면 볼 수 없었을 탁발 행렬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함이 밀려왔다.


가장 고참으로 보이는 스님이 맨 앞에 서서 걸어오고, 그 뒤로 스님들이 조용히 줄지어 시주를 받으며 지나갔다.

나는 그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틈틈이 자리를 옮겨가며 분주하게 카메라에 담았다.

시주를 하는 사람들의 표정, 시주를 받는 스님들의 표정. 모든 순간이 나의 눈과 카메라에 담겼다.


이처럼 매일 새벽 이어지는 탁발은 단순히 음식을 주고받는 행위를 넘어선다.

탁발은 불교 수행자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행하는 중요한 수행 중 하나이자,

승려와 재가자(일반 신도)가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이다.

스님들은 탁발을 통해 속세의 물건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재가자들은 시주를 통해 공덕을 쌓으며 자비심을 기른다.

본래 탁발은 인도 지역의 수행자들이 행하던 전통적인 행위였으며 불교에도 이 영향을 주게 되었다.


석가모니가 불교를 창시한 이후 승려들이 생활을 유지하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이었으며,

태국이나 미얀마 등지의 상좌부 불교에서는 승려들이 여전히 이 탁발 행위를 많이 하고 있다.

매일 새벽 이루어지는 이 신성한 행사는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하고,

정신적인 가치를 중요시하는 불교의 정신을 보여주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는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오가는 선순환의 과정인 것이다.

이런 신성한 행사를 몬족 마을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순간이었다.

탁발 행렬을 모두 촬영하고 돌아오는 길은 어제 건넜던 대나무 뗏목 다리를 이용해 숙소로 복귀했다.

마침 그때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숙소로 돌아와 아침 식사를 하고, 나는 글 작업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체크아웃을 한 뒤, 우리는 다시 칸차나부리 메인 시티 방향으로 향했다.

돌아가는 길이 멀어 칸차나부리 외곽에 위치한 숙소에서 하루 묵고,

다음 날 한 군데 정도 출사지를 방문한 뒤 집으로 복귀할 계획이다.

이 여정도 어느덧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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