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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다른 태국> 따뜻한 들숨

태국 쁘라쭙키리칸 | 1

by 강라마

이번 출사는 조금 특별한 여정이었다.

내가 만든 원칙상 한 번의 여정에 한 짱왓(주)만 담는 것이 타이로드 프로젝트의 기본이지만,

이번엔 부모님이 태국에 오시면서 효도 여행과 출사 여행을 함께 겸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짱왓이 바뀌더라도,

부모님께 태국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 계획을 조금 유연하게 가져가 보기로 했다.


그렇게 전날 페차부리의 카오루앙 동굴 출사를 마친 뒤,

둘째 날에는 쁘라쭙키리칸 주에 위치한 프란부리(Pranburi)의 염소 체험지로 향하게 되었다.

사실 이곳을 선택한 데에는 개인적인 기억이 큰 몫을 했다.

태국 전국 출사 프로젝트의 출발점이었던 롭부리에서 ‘태국의 뉴질랜드’라 불리는 염소 목장에서 인상적인 시간을 보낸 기억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따뜻한 감정이 자꾸만 떠올라 비슷한 경험을 다시 해보고 싶었다.

여러 지역을 한 번에 다녀올 수는 없었기에, 태국 남쪽에도 그런 장소가 있는지 찾아보았고,

우연히 프란부리 댐 근처에 염소들과 자유롭게 교감할 수 있는 포인트들이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다.

주저 없이, 그곳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가는 길은 예상보다 깊었다.

도심에서 멀어질수록 풍경은 점점 조용해졌고, 도로 옆 풍경도 시골스러워졌다.

어느 순간 휴대폰 신호가 5G에서 3G로 바뀌더니, 급기야 신호가 잘 잡히지 않았다.

차량도 거의 오가지 않았고, 잠깐씩 마주치는 사람들조차 드물었다.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말 그대로 '아는 사람만 오는 곳' 같았다.

하지만 그 한적함은, 도착 후 더욱 특별한 풍경으로 보답받았다.

저 멀리 수면이 반짝이는 저수지 혹은 호수처럼 보이는 강가 주변으로, 염소 먹이를 주는 포인트들이 여럿 보였다. 그곳에 사는 주민들이 저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염소들을 기르며,

관광객이 먹이를 주고 교감할 수 있게 해놓은 듯했다.

나는 그중 한 곳을 정해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약간의 비포장 오프로드를 지나 산을 살짝 오르자,

마치 다른 세계에 들어선 것 같은 풍광이 펼쳐졌다.

넓은 풀밭 위로 자유롭게 뛰노는 염소들, 그리고 잔잔한 저수지 물가와 그 주변을 감싸는 산자락.


이전에 갔던 롭부리의 염소 체험지가 광활한 대지 위에서 바람을 맞는 느낌이었다면,

이곳은 산에 둘러싸여 좀 더 아늑하고 자연 속에 파묻힌 듯한 인상이었다.

무엇보다도 염소들의 움직임에서 큰 차이를 느꼈다.

이곳의 염소들은 제각기 뛰놀고, 서로 장난치고,

어느 순간 산 쪽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등 꽤나 자유로워 보였다.

통제된 환경이라기보다는, 스스로 움직이는 작은 생명체들처럼.

그 와중에도, 그들을 지켜보는 개 한 마리가 있었다.

염소치기 소년의 역할을 하는 듯한 존재.

말없이 그들의 경계를 따라 움직이며 무리를 조용히 지키고 있었다.

염소들과 개,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풍경이 묘한 조화를 이루며 평온한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페차부리_2-2025-07-11-29.JPG 2025.06-07 | Thailand_Phetchaburi/Prachuap Khiri Khan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이곳에서는 입장료 없이 염소 먹이만 구입하면 자유롭게 체험할 수 있었다.

나는 여러 번 사료를 사서 먹이를 주었고, 손을 내밀자 작은 발굽 소리들이 주변을 채우며 몰려들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아기 염소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작고 여린 녀석들이 쫄래쫄래 따라오기도 하고, 엄마 젖을 먹는 모습도 볼 수 있었는데,

그 장면을 직접 눈앞에서 마주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순간, 어쩌면 이 장소의 온기를 가장 강하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염소들의 평화로운 일상, 아기 염소의 생명력, 그 곁을 함께한 부모님과 아내, 아들과 함께 한 이 시간.

모든 것이 겹쳐지며 따로이던 것들이 한순간 어우러진 듯한 따뜻함이 밀려왔다.

그 따뜻함은 단순한 풍경의 감상이 아니라, 생명과 생명 사이에 흐르는 조용하고 섬세한 사랑의 조화였다.

페차부리_2-2025-07-11-105.JPG 2025.06-07 | Thailand_Phetchaburi/Prachuap Khiri Khan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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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차부리_2-2025-07-11-16.JPG 2025.06-07 | Thailand_Phetchaburi/Prachuap Khiri Khan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페차부리_2-2025-07-11-91.JPG 2025.06-07 | Thailand_Phetchaburi/Prachuap Khiri Khan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카메라를 드는 손이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가볍게, 더 다정하게 셔터를 누를 수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한참을 머물렀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음날의 출사를 기약하며 돌아섰다.

프란부리의 작은 산기슭, 아무도 모르게 흐르는 온기.
이번 여정은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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